[뉴스토마토 김보선기자] 국내 파생상품시장은 규제를 우선하는 정책 때문에 극심한 거래위축 상태에 빠져있다.
투자자 보호와 투기거래 억제를 명분으로 파생시장에 대한 규제가 시행된 이후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대두돼 왔다.
금융당국은 업계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방안을 내놓았지만, 방점은 시장활성화가 아닌 위험관리에 찍혀 있어 업계와의 시각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개인투자자 진입장벽 상향 지나치다" 한목소리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대표적인 장내파생상품인 코스피200 옵션의 올해 1분기 거래대금은 지난 2011년 대비 45.0%, 코스피200 선물의 거래대금은 46.7%에 그쳤다.
파생결합증권인 주식워런트증권(ELW)의 거래대금은 2010년 대비 5.7%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200 옵션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지난 2010년→2011년 증가한 것을 끝으로 매년 감소세에 있다. 올해 7월 말 현재 일평균 거래대금은 7060억220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시각은 다르다.
금감원은 최근 장내파생상품시장 관련 보고서에서 "코스피200선물·옵션시장의 거래규모가 현물주식시장 대비 비대하고, 이는 미국, 홍콩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이에대해 업계 전문가는 "파생시장의 거래규모를 현물시장과 비교해 과도하다는 등의 분석은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비교지표가 아니다"며 "수긍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파생상품시장 활성화의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변동성 역시 크게 감소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코스피200옵션의 변동성을 기반으로 한 변동성지수(V-코스피)는 지난 2011년 8월 28포인트에서 올해 7월로 12포인트까지 50% 감소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파생상품투자상담사는 7월 말 현재 4만9980명으로, 지난 2010년 8만1773명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특히 2011년 7만1474명을 기점으로 4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유동성과 변동성이 축소된 주요 원인으로 옵션승수 규제를 꼽는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1년 12월 코스피200 옵션승수를 기존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상향한 뒤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파생상품실장은 "코스피200 옵션 승수 인상의 목적처럼 파생상품시장의 거래량과 거래대금을 동시에 감소시켜 투기적 거래를 억제하겠다는 사례는 외국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제적 흐름이 아니라도 개인투자자의 참여를 억제하고 옵션에 집중된 유동성을 다른 시장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6월 파생상품 발전방안을 놓고는 업계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결과라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개인투자자의 진입장벽을 높였다는 데 대해 업계와 전문가들은 '지나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위는 장내파생상품시장에 이른바 적격개인투자자 제도를 도입, 개인투자자는 3000만원 이상을 예탁하고 사전교육과 모의거래 합산 총 80시간의 시간을 투자하도록 했다.
파생결합증권시장에서는 ELW의 유동성공급자(LP) 호가 제한 완화를 ELW 발행조건 표준화 정착 등을 조건으로 허용하겠다는 방침에 그쳐 업계에 실망감이 크다.
◇파생시장 속성 이해못하는 정책 '한계'
금융위는 장내파생시장에서는 개인투자자 자격의 장벽을 높이는 한편, 전문투자자 참여 확대의 일환으로 은행이 직접 국재, 외환 파생상품 자기매매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은행들이 기존에 선물사를 통해 장내파생시장에서 거래하던 데서 벗어나 직접매매를 함으로써 증권사나 선물사의 수익이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김중흥 금융투자협회 파생상품지원실 차장은 "증권사나 선물사가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업권별 파이 논쟁으로 해석할 수 없다"며 "금융투자업자 본질적인 업무인 투자매매업이 은행에게 허용된 것이고 상품 확대는 시간 문제라는 점에서 금투업계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한 선물회사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거래가 위축된 상황에서 영업환경이 더 악화됐다"고 불만감을 드러냈다.
금감원에 따르면 선물회사의 수익성은 2013년 1분기 34억원, 2분기 61억원, 3분기 19억원, 4분기 46억원 손실 등으로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올 1분기 7억원으로 흑자전환했지만, 판매관리비가 줄어드는 등 불황형 흑자 수준에 그쳤다.
한 금융 전문가는 "해외의 경우 대형 금융사고가 장외에서 주로 발생하자 상품을 장내에서 활성화하는 게 추세"라며 "우리는 오히려 장내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궁극적으로는 파생상품시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시장의 유동성을 의도적으로 줄여 다른 상품으로 분산하려는 시도는 복잡하게 연계된 파생시장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얘기다.
남길남 실장은 "미시적으로는 옵션승수 인하나 개인투자자 참여 제한, LP 호가 제한 등에 대한 해결방안이 필요하고,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시장을 규제하는 원칙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 실장은 "단기적 대책이나 사후 뒤처리 수준이 아니라 일관된 원칙으로 예측가능한 시장을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계속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앞서 서울 중구 태평로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금융규제 개혁방안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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