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결임박 한-중 FTA, 朴 뜻 따르다 흥정수순 밟나
2014-11-07 16:45:26 2014-11-07 16:45:26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이라는 초대형 태풍이 국내에 상륙하기 직전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 FTA 제14차 협상은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중에 진행되고, 장관급 회담으로 지위가 격상된 만큼 한-중 FTA가 내주 초 타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한-중 FTA 타결에 유례없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왠지 호들갑스럽고 꺼림칙하다. 한-중 FTA 연내 타결을 공언한 박 대통령의 입김 탓에 장관까지 출동한 느낌마저 든다. 한-중 FTA가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7일 정부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6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가오후청(高虎城) 중국 상무부장은 베이징에서 저녁 늦게까지 한-중 FTA 주요 쟁점을 조율했으며 22개 FTA 챕터 가운데 상품과 원산지규정 등 6개 챕터에서 가장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6개 챕터란 ▲상품 ▲원산지규정 ▲서비스 ▲금융 ▲자연인의 이동 ▲경제협력 등을 가리킨다. 현재 한-중 FTA 협상은 상품과 전자상거래 등 22개 챕터에서 협의가 진행됐는데 6개 챕터를 뺀 16개 사항은 그동안의 협상과 실무협의를 통해 사실상 타결을 합의했다.
 
결국 이 6개 챕터가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중 FTA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만들면서 '한-중 FTA 연내 타결'을 자랑하고 싶은 박근혜 대통령의 속을 태우고 있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 정부가 이번 협상에서는 한-중 FTA 연내 타결을 위해 유독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중 FTA 빅딜론' 또는 '흥정'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우선 이번 협상이 그간의 협상과 달리 장관급으로 격상돼 열리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산업부는 이번 14차 협상과 관련해 "양국 장관들이 정무적으로 판단해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정치와 외교상황을 고려해 FTA를 타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부에서는 "한-중 FTA를 패키지로 일괄타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는 협상에서 난항을 겪는 부분을 패키지로 묶어 이 문제가 풀리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합의를 보는 절차다. 어떻게든 FTA를 연내 타결을 위해 빅딜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협상이 한-중 정상이 모인 APEC 기간에 열리고 우리 정부 대표단이 굳이 중국까지 찾아갔다는 점도 한-중 FTA 연내 타결을 위한 빅딜과 흥정 가능성을 시사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FTA는 모멘텀의 문제"라며 "APEC이 지나면 한-중 FTA 협상이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APEC이 한-중 FTA 타결의 마지노선이 됐다.
 
아울러 다른 관계자는 어제 윤 장관과 가오 부장이 만남과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으나 "양측 입장을 조금씩 반영하자는 데 뜻을 모았고 협상 막판까지 조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협상에서 FTA 타결의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마저 엿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한-중 FTA에 대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정부의 그간 태도와 다소 어긋난다. 박 대통령의 FTA 연내 타결 의지와 달리 정부는 굳이 시한에 연연하지 않았다.
 
실제로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산업부 국정감사에서 "APEC에서 한-중 FTA를 가서명하는 것은 어렵다"며 "타결에 시한을 두지 않고 협상내용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문재도 산업부 제2차관 역시 지난달 말 "FTA 타결 시기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고 국익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윤 장관과 문 차관의 발언은 당시 청와대와 여당, 정부 내에서도 "APEC 때 한-중 FTA를 타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때였다.
 
한-중 FTA를 꼭 올해 안에 타결시켜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에 정부가 밀린 셈이다.
 
빅딜 또는 흥정의 내용도 문제다. 우리는 거부하지만 중국이 원하는 것은 우리 농산물 시장이고, 우리는 원하지만 중국이 반대하는 것은 중국 제조업 시장인데 빅딜이라면 서로 이 둘을 내놓는 것밖에 없다. 원산지규정의 세부기준이나 다른 챕터도 마찬가지다.
 
이에 농업단체는 APEC 정상회담 중 한-중 FTA 타결은 중국이 보는 앞에서 우리 농산물 시장을 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정부는 농산물을 초민감품목으로 지정해 중국에 양보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와 석유화학, 철강, 제조업을 위해 일괄타결이라는 꼼수로 농산물 시장의 개방시기를 조율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중 FTA 협상과정은 한-미 FTA 때 정부가 보여준 흥정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농산물 시장개방을 적극 부인하고 반대하지만 결국 '더 큰 수출효과'를 명분으로 내세워 수입 농산물 관세를 장기적으로 인하하는 단계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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