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前 검찰총장의 추태..검찰을 위한 변론
2014-11-13 19:09:59 2014-11-13 19:23:14
"이것 봐, 최 기자. 그런 것까지 우리가 가르쳐야 돼?"
 
대검찰청의 한 중견간부가 물잔을 격하게 내려놓으며 언성을 높였다. 평소 신사답고 너그럽기로 소문난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순간 그의 방에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2012년 11월20일. 이 날은 우리 검찰 역사에서 손꼽히는 치욕의 날로, 이른바 '성추문 검사' 사건이 드러난 날이다. 검사들은 이 날을 '검치일(檢恥日)'이라고도 부른다.
 
절도 피의자로 조사를 받던 여성이 피해자로, 수사를 하던 검사가 피의자로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지휘관격인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은 사퇴를 했다. 여러 사건이 겹쳤지만 결국 검찰총장까지 중도 사퇴했다. '섹검'이라는 조롱과 함께 검찰을 수술하라는 요구가 외부에서 거대한 파도가 되어 덮쳤다. 국민의 신뢰는 회복의 기미마저 희미했다.
 
이후 검찰은 신입 검사들에 대한 사건 재발방지 교육을 강화했다. 다 큰, 그것도 사법시험을 거쳐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의 살인적인 교육과 수련을 거친 검사들에게는 치욕이었다. 선배 검사들로서도 그랬다. 앞의 대검 간부의 절규가 이 모든 치욕에 대한 울분을 대변했다. 이후 검찰 수뇌부는 물론 일선지검의 간부들은 성(性)에 대한 일탈에 대해서 만큼은 경끼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최근 발생한 '음란 검사장' 사건까지 터지자 검찰은 죽은 듯 있었다.
 
2014년 11월12일. 2년 만에 성추문 사건이 또 터졌다. 이번에는 전직 검찰총장이다. 상대는 자신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골프장의 여자 캐디다. 그는 샤워 중이던 딸 같은 캐디를 굳이 불러내 입을 맞추고 볼을 비볐다. '내 아내보다 예쁘다. 애인해라'는 등 치근대다가 돈을 쥐어주고 갔다고 한다.
 
경기지방경찰청에 고소된 이 사건의 불똥이 역시나 검찰로 튀었다. 검찰 쪽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개인의 일탈이다. 왜 검찰을 들먹이나."
 
사건 직후 만난 검찰 한 중견간부의 이 말은 여러 의미를 한꺼번에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는 의혹이 제기된 전 검찰총장을 검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 간부는 "현직 검사가 벌인 일이라면 비판을 달게 받겠다. (이 분은)검찰을 떠난 지 10년도 넘었다. 전(前)자(字)를 붙이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당사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고위 검사 출신들 중에는 아직도 후배 검사들에게 자신이 맡았거나 민원을 받은 사건으로 전화를 해 괴롭히고 있다는 소문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검찰 원로랍시고 갖가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또 다른 추문이다.
 
성추문 의혹을 받고 있는 전 검찰총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사건이 알려진 당일과는 달리 오늘은 법적대응까지 언급하고 있다.
 
물론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속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추문에 오른 전 검찰총장의 명예는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고도의 청렴성과 도덕성을 생명으로 여겨야 하는 검찰 출신, 그것도 총수였던 인사가 이런 추문에 올랐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다. 후배 검사들과 대한민국 검찰에 대한 극한의 모욕이다. 설령 이번 사건의 진실이 피해자의 과장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쉬운 상대가 됐다는 것 또한 소가 웃을 일이다.
 
이번 사건을 보는 검찰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 분위기는 유지될 것이다. 그동안 온갖 추문과 구설에 시달려온 검찰의 방어본능이 발동한 셈이다. 검찰 출신 법조인들은 이 점을 제대로 봐야 한다. 예전의 걱실걱실 말 잘 듣던 후배들이 아니다. 선배라면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검찰에겐 추문이나 흘리고 다니는 선배들은 더 이상 검찰이 아니다.
  
최기철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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