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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에스 역설'로 뉴욕 '타임스퀘어' 그리는 서울시
광화문 광장 세종대로 하행선 확대안 정부 제출
도로 줄면 정체 주는 효과 기대..광장 기능도 강화
2015-03-20 14:10:03 2015-03-20 14:23:47
[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1990년 뉴욕시는 '지구의 날' 행사를 위해 42번가 도로를 하루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42번 거리는 뉴욕에서 항상 혼잡한 곳으로 유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뉴욕시에 사상 최악의 교통 정체가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루시우스 J 리치 당시 뉴욕시 의원은 "로켓 과학자나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없어도 인류 멸망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42번가 도로를 막아도 재앙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교통 흐름이 더 좋아졌다. 그 후 뉴욕시는 42번가 도로는 차량을 제한했다. 대신 광장 등 보행자와 관광객을 위한 공간을 늘려갔다.
 
차들이 줄어든 42번가는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42번가는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등으로 더 친숙해졌다.
 
◇'도로를 줄이면 이기심도 줄어든다'
 
'타임스퀘어'는 '브라에스의 역설'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의 수학자 디트리히 브라에스가 1968년 발표한 이 역설은 '길이 새로 생기면 교통 흐름이 더 나빠진다'는 내용이다.
 
시민들을 위해 길을 늘리는 것이 왜 시민들을 더 불편하게 만들까?
 
브라에스 역설을 연구한 조엘 E.코헨 록펠러 대학 박사는 "게임 이론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모든 사람들이 손실을 입는다. 교통 체증도 게임이론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A지역에서 B지역을 연결하는 혼잡한 C도로가 있다고 가정하자. 정부는 혼잡을 줄이기 위해 D도로를 만들었다. 그러면 혼잡한 C도로를 이용하지 않던 차들도 D도로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차들이 더 많아지면서 도로 혼잡은 더 심해진다.
 
반대로 C도로를 줄일 경우 C도로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줄어 교통체증은 감소하는 것이다.
 
'브라에스 역설' 효과가 입증된 후 미국, 독일 등에서는 교통 체증 대책으로 도로 축소를 도입하고 있다. 서울에서도 이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보행자 권리 높이고 정체 줄인다
 
20일 현재 서울시는 정부 '광복7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에 국가상징광장 조성 공모사업으로 광화문 광장을 세종대로 서쪽 하행차선까지 확장하는 안을 제출한 상태다.
 
기존 하행차선을 없애는 대신 동쪽 상행차선 중 2차선을 하행차선으로 바꾸고 일반 승용차는 못 지나가도록 할 방침이다.
 
세종대로는 서울역, 시청, 명동, 청계천 등 주요 지역과 이어져 있어 혼잡한 도로다. '브라에스의 역설' 대로라면 세종대로에서 차량을 통제하면 주변 지역들까지 혼잡이 줄어들게 된다.
 
또 광화문 광장을 세종대로 서쪽 차선까지 넓히면 원래 계획했던 광장 기능을 되찾게 된다. 지난 2005년 문화재청에서 제안한 광화문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앞이었다. 세종대로는 미국 대사관 쪽에만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 여론조사에서 세종대로 중앙에 광장을 배치하는 방식이 많은 득표를 얻어 지금의 광화문 광장이 됐다. 이 때문에 광장, 공원 등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교통만 불편해져 '세계 최대 중앙 분리대'라는 비아냥을 듣게 됐다.
 
서울시는 3년 전부터 세종대로 하행선을 막는 '보행전용거리' 축제를 주말에 열면서 교통 영향 등을 분석해왔다. 내부적으로 광장을 넓혀도 큰 영향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뿐 아니라 자치구도 '브라에스 역설'을 도입할 계획이다.
 
영등포구 영중로는 영등포역 롯데백화점, 영등포시장과 인접해 있다. 또 여의도, 영등포로 가는 길목이다. 쇼핑 차량들과 통행 차량들이 몰리면서 영중로에는 심한 정체가 발생한다.
 
또 방문객들과 노점상들로 보행로를 걷기도 불편한 상황이다. 그래서 영등포구는 영종로 차로를 줄이고 보행로를 넓히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세종대로 보행자전용거리 축제에서 대형 비누방울을 만드는 공연을 하고 있다.ⓒNews1
 
◇도로 다이어트, 주민·부처 설득 최대 난관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동차 도로 다이어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민선 6기 핵심과제로 박 시장은 "도심차도를 줄이고 보행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에서 차가 줄면 대기오염이 줄고 보행자가 많아지면 지역 상권도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 같은 도로 축소가 단시간에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먼저 '브라에스 역설' 효과를 신뢰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도로가 줄어든 것을 반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가 다니는 고가도로를 보행자 공원으로 바꾸는 서울역 고가공원 사업에 대해 교통 정체가 늘고 지역 상권이 타격을 입는다고 반대하는 주민 목소리가 크다.
 
관련 부서들의 반발도 있다. 경찰은 광화문 광장 확대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가 잦은 광화문 광장이 넓어질 경우 통제가 더 힘들어 질 수 있다는 우려다.
 
서울시 교통정책국 관계자는 "광화문 광장 확대 사업은 장기 프로젝트다. 주민들과 관계 부서들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시민들의 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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