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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짱)내부출신 김원규와 홍성국, 2인2색 지략 대결
2015-06-08 17:31:28 2015-06-08 17:31:28
1985년 럭키증권에 신입직원으로 입사해 그 회사 대표자리에 오른 김원규 사장과 1986년 대우증권에 들어와 회사를 이끌기까지의 홍성국 사장. 각각 1960년생, 1963년생인 두 사장은 국내 금융투자업계를 선도한 1세대 증권맨이다. 두 수장 모두 회사 최초 내부출신 사장으로 금투업계 성장사에 주요 획을 그었다. 김 사장은 통합 NH투자증권 출범과 함께 노사갈등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우증권 또한 홍 사장을 차기 사장에 올리며 풍문을 무마했다. 각각 ‘수익성 제고’와 ‘매각’이라는 과제를 떠안은 두 사령탑의 지략 대결이 어떻게 판가름날지 시장의 관심이 모아진다.
 
◇김원규 사장 "자본시장의 기준점이 되겠다"
 
김원규 NH투자증권 사장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 사장은 1985년 경북대 경영학과 졸업과 동시에 럭키증권(현 NH투자증권)에 입사한 뒤 수십명의 신입사원 중 한 명으로 NH투자증권에서의 30년을 시작했다. 40여년이 넘는 NH투자증권 역사상 최초의 내부 출신 사장이기도 하다.
 
그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후 사장이 되기까지 30년간 각종 업무를 두루 거쳤다. 증권업 전반에 관한 전문성과 회사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꿰뚫고 있다는 점은 강점이다.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쌓은 사내외 네트워크는 무엇보다 가치 있는 자산이라고 그는 자평한다. 후배 사원을 대할 때 격식과 지위보다 소탈함과 인간적 친밀함을 바탕으로 대한 결과라고 했다.
 
김원규 사장이 입사했을 당시 주식시장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주가가 거의 수직으로 무섭게 오르던 시기다. 종합주가지수는 올림픽 직후 1989년 4월1일 1007.77포인트를 기록한 뒤 1992년 8월25일 494포인트를 바탁으로 찍었다. 그리고 1994년 11월에는 다시 1138포인트까지 상승하며 전고점을 갱신했다.
 
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타던 당시 했던 다짐은 이후 김원규 사장의 영업활동에 있어 모든 기준점이 됐다고 했다. 그가 평소 직원들에게 “고객의 관점에서 접근하자. 고객 보호 없이는 고객도, 직원도 모두 살아남을 수 없다”고 수없이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입사 10년만인 1996년 35살에 최연소로 포항지점장이 됐다. 그 무렵 전고점 이후 1998년 6월까지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고 특히 지점장 2년차였던 1997년에는 IMF라는 초유의 경제사태가 터졌다. 사실상 장이 수직으로 급락하던 시기다.
 
하지만 도전과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뚝심은 실력이 됐고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덕분에 중부지역본부장과 강남지역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NH투자증권의 자산관리영업을 주도했고 2009년에는 WM사업부 대표로 취임했다. 2011년에는 WM사업부 대표로 메릴린치 서울사무소의 프라이빗뱅커(PB) 조직을 흡수해 현재의 프리미어블루 강북센터를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해외주식은 물론 해외채권 등 해외투자형 상품 붐을 일으켰다. 최근 해외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진 배경에는 이미 4년 전 해외투자형 상품을 강조한 김원대 사장의 선견지명이 있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중장기 성과 확보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핵심으로 꼽은 전략이 고객 수익 극대화에 집중됐다는 점도 주목된다. 개인고객의 자산배분 전략을 세워주는 연구개발(R&D) 조직을 운영하고 향후 고도화된 상품전략가 사후관리를 책임지는 자산배분전략 담당 임원(CIO) 제도 도입을 통해 개인고객들에게도 전문적인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NH투자증권이 가진 팀 영업모델 전략도 그런 예다. 지점·직원평가에 고객수익률을 반영하며 고자산군(HNWI) 고객이 요구하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하나의 팀이 집단지성을 통해 만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마지막 단추는 자산관리 플랫폼에 있다. 고객의 성향을 별도로 관리함으로써 영업직원의 리소스를 고객 자산관리에 집중한다.
 
 
◇'정통 대우맨' 홍성국 대표이사, 소통의 리더십
 
KDB대우증권을 이끌고 있는 홍성국(52) 사장은 근 30년을 대우증권에 몸담은 ‘정통 대우맨’이다.
 
홍 사장은 1986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해 대우증권에 공채 입사했다. 입사 뒤 법인영업부(4년), 투자분석부(16년), 리서치센터 총괄 상무(3년), 홀세일사업부(2년 6개월), 미래설계연구소장(1년 9개월), 리서치센터 총괄 부사장(2년 5개월)을 거쳐 지난해 12월 사장 자리에 올랐다.
 
앞서 그는 지난 2000년 4월부터 투자분석부장을 지내며 시장에서 대우사태 이후 침체됐던 리서치센터를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증권업계의 미래학자’로 불리며 여러 저서를 발간했다. ‘디플레이션 속으로(2004)’, ‘세계 경제의 그림자, 미국(2005)’, ‘글로벌 위기 이후(2008)’, ‘미래설계의 정석(2012)’, ‘세계가 일본된다(2014)’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정통 대우맨’답게 회사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또 시장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강인한 리더십을 통해 임직원을 하나로 뭉치는 강점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KDB대우증권 관계자는 “공채 출신 최고경영자(CEO)들은 때로는 선배로서 때로는 경영진으로 직원 개개인과 소통하며 부드러운 리더십을 통해 경영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며 “좋은 시장분위기와 맞물려 향후에도 다앙한 긍정적인 성과와 효과들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소통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대우증권 최초의 공채 출신 최고경영자(CEO)인 홍 사장은 취임 이후 임직원들과 활발한 소통을 펼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디테일한 영향력과 해결사 능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사내인트라넷에 신설한 ‘직원 제안게시판’만 봐도 개설 후 600여건 이상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직원들로선 엄두도 못 내던 사장과의 메신저 대화도 홍 사장에게만은 열려있다. 이를 통해 알게 된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제안을 회사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차별된 카드를 빼 들고 변화무쌍한 영업에도 나서고 있다. 홍 사장은 취임 후 “최근 3~4년간 증시 침체로 증권사들의 지점영업 부문이 크게 위축되면서 손익구조가 운용손익(S&T) 부문 등으로 편향되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증권회사가 시장 상황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신시장 개척 등 새로운 수익원 확보 노력과 함께 균형된 손익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독보적 프라이빗 뱅커(PB) 하우스 추진단’을 설치해 상품·서비스 개발, 콘텐츠 공급과 관련된 사업부문 간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또 프라이빗인베스트먼트뱅킹(PIB)점포를 활성화해 지점 영업의 대상을 개인 고객에서 법인 고객으로 확대함으로써 투자은행(IB)부문과의 시너지 연계 영업도 강화했다. 전사적 지원체계를 리테일(Retail)사업에 집결한 것이다.
홍 사장은 조직 문화 확립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는 매일 입버릇처럼 ‘KDB대우증권에는 캐쉬(CASH)가 있다’고 말한다. ‘캐쉬’란 콘텐츠(Contents)와 마음가짐(Attitude), 전문성(Skill), 기업문화(Habit)를 뜻하는 영어단어의 앞 글자를 딴 말이다. 그는 본사와 지점 간, 부서 간 직원들의 코워크(co-work)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차현정 기자 ckck@etomato.com
권준상 기자 kwanjj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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