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주장 일리 있다…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주 이익 무시"
(피플)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국민연금이 문제 제기했어야…삼성, 총수일가 지배권 강화만 생각해"
2015-06-22 10:00:00 2015-06-22 14:38:03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뉴스토마토
 
삼성의 경영권 승계가 종착지를 눈앞에 두고 제동이 걸렸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문제 삼으며 공세를 취하자, 삼성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당장 내달 17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불가피한 가운데, 사태는 법정싸움으로 비화됐다.
 
헤지펀드의 특성 상 엘리엇의 목적은 합병 이벤트를 활용한 한몫 챙기기로 보인다. 다만 주주가치에 기반, 양사 간 합병비율을 거론한 엘리엇의 주장 또한 일부 타당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물산 소액주주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엘리엇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유다.
 
이 같은 빌미를 내준 삼성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삼성은 합병 이유를 사업 목적에서 찾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 강화가 본질이란 게 시장의 지배적 분석이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지배구조는 총수 1인 중심의 황제경영을 위한 수단이었으며, 이는 외국 투기자본에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때문에 단순 애국적 관점에서 엘리엇을 제2의 소버린, 또는 론스타로만 매도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삼성이 국내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임에도 국민에게 긍정과 부정의 야누스로 비치게 된 데는 그간의 각종 불법·편법이 있었으며, 이는 경영권을 사유화, 대물림한 결과라는 지적이 뼈아픈 이유다.
 
엘리엇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찾았다.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연구>와 <벌거벗은 재벌님>을 펴낸 재벌 전문가이자, 삼성을 비롯한 국내 재벌에 대한 따끔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몇 안 되는 학자다.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종목적은 수익 아닌가.
 
▲엘리엇은 헤지펀드(hedge fund)로, 단기간에 투자기회를 포착해 투자이익을 회수하는 곳이다.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거나, 실적이 좋지 않은 기업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인 교체 등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는 구조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엘리엇이 들어왔다는 건 기업 이벤트를 통해 단기간에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엘리엇은 표면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 등 불합리한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을 주장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통합과정에서 생기는 이윤을 추구할 기회로 포착한 것이다.
 
-합병비율이 최대 쟁점이다. 삼성이 이 같은 어려움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엘리엇은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책정됐고, 삼성이 제시한 합병 이유 역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자본시장법에는 위배되지 않지만, 시점상의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삼성물산의 주가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고, 반대로 제일모직의 주가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 시점을 합병 시기로 맞췄다는 것으로, 이 같은 계산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피해다. 엘리엇은 이런 점들을 종합해 이번 합병이 ‘불법(illegality)’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합법적이지만, 이사들이 주주의 이익을 지켜줄 ‘신의·성실의 의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여러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가능성이 시장에서 거론되면서 물산의 주식이 저평가되기 시작했다. 제일모직 상장 이후에 다른 대형 건설사들은 주가가 상당히 올랐는데, 삼성물산은 그렇지 않았다. 삼성물산의 주가와 장부상 1주의 가치 비율인 ‘PBR’이 너무 낮다. 삼성은 다른 건설사와 비교해 그다지 낮지 않다고 얘기하지만, 삼성물산이 가지고 있는 삼성 계열사의 주식을 빼고 계산하면 마이너스로 나오기 때문에 지나치게 낮다고 얘기할 수 있다. 제일모직의 경우 ‘승계 프리미엄’으로 상장 당시 증권사들이 적정 주가를 9만원으로 제시했는데, 현재 18~20만원까지 올랐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삼성물산의 주주이익이 아닌,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의 입장에서 합병에 나서고 있다는 게 엘리엇의 주장이다.
 
삼성이 주장하는 사업간 시너지 효과나, 사업 다각화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고, 명확하지 않다고 엘리엇은 맞서고 있다. 기업결합의 이유는 상식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것이지, 사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KCC가 백기사로 나서면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반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합병 전망은.
 
▲합병비율 계산이나, 이사회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행위들은 형식적으로 불법이 아니다. 그래서 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이 말하는 건 “이사회에서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느냐”, 이런 의미에서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다.
우리 법원이 형식적인 법을 지킨 측면을 강조해서 불법이 아니라고 판결할 지, 형식은 합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중요한, 그래서 이사들이 주주들의 이익을 대신해서 결정한 게 아니라고 판단할 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법원이 어떤 판결을 할지 중요한데, 예상대로 (삼성에게) 유리한 판결을 한다면 엘리엇은 투자자와 국가 간 소송인 ISD(Investor-State Dispute)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ISD에서 이사들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행위가 아닌, 제3자인 이재용 부회장의 이익을 위해 했다고 판단하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ISD로 가면 국가와 투자자 간의 소송이지만, 비용은 삼성에서 내야 하지 않나 싶다.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최근 외환은행과 론스타의 문제는 세금 문제가 걸려있어 국가와 당사자 간이었지만, 이번 건은 성격이 다르다.
 
-삼성물산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판단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 국민연금의 역할론에 대해.
 
▲사실 국민연금이 이런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엘리엇은 헤지펀드로 단기간에 치고 빠져 이익을 내는 구조다.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기업이 허점을 보일 때 들어오기 때문에 기업들이 긴장해서 잘할 수 있다.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다. 국민연금의 경우 장기투자를 하는데, 지금 당장 물산 주식이 올랐지만 장기적으로 승계 프리미엄이 떨어질 때 국민연금이 가장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기금이 고갈된다고 하는데, 연금 운용에 대해서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건 굉장히 문제가 많아 보인다.
 
-최근 2년간 삼성이 추진한 일련의 사업재편 목적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 주주나 이해관계자의 권익은 무시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연히 주주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있다. 총수 일가의 지배권 강화만을 생각하고 있다. 엘리엇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물산은 과소, 제일모직은 과대평가를 받고 있어 장기적으로 승계에 따른 거품이 빠지면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사실 기업결합이라고 하면 이사회에서 각 주주의 이익을 위해 대변해야 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독립적인 협상이 되지 않았다. 짜고 친 고스톱이고,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강화한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이익은 무시됐다.
 
-국내 30대 대기업 가운데 25곳이 외국인 지분으로 인해 '제2의 삼성물산'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삼성물산의 경우도 엘리엇이 7% 이상을 사들이기 전까지 (단일) 외국인이 5% 이상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다. 나머지 외국인 지분 역시 1%가 안 된다. 소액 주주들을 규합해서 단체행동을 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 그렇게 계산해서 얘기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안정적 기업의 지배구조는 얼마냐고 얘기할 때 30% 수준이라고 하는데, 사실 1대 주주와 2대 주주와의 격차가 중요하다. 많은 소액주주가 단체행동을 하기 쉽지 않다. 한 예로 소버린이 소액주주들을 모아서 최태원 회장보다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졌다. 때문에 외국인 지분이 많으면 이런 위험에 노출된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본다.
 
이번 삼성물산의 경우 삼성전자 지분(4.1%)을 가지고 있다는 특별한 이유와 승계과정에서 기업결합을 한다는 특별한 사정에 의해 기회가 생긴 것이고, 엘리엇이 이를 포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지분이 많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 굉장히 심한 것이다.
 
-소버린 사태 때도 나온 얘기지만, 기업사냥꾼 등에 대비해 경영권 방어수단인 포이즌 필(Poison Pill) 제도와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가 흔히 기업 지배구조 얘기를 할 때 내부적 통제와 외부적 통제의 메커니즘을 말하는데, 내부적 통제의 메커니즘은 주주들의 능동적인 행동을 통해 주주들이 경영자를 감시하는, 외부적 통제는 적대적 M&A 등을 말한다. 우리는 내부나 외부적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내부의 경우 총수 일가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주주들 역시 액티브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아 결국 황제경영을 하게 된다. 지금 엘리엇이 물론 얄밉지만, 이런 게 외부 통제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것이다. 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 등은 내·외부 통제가 잘 작동되고 과도하게 M&A 위협이 있을 때 가동되는 부분인데, 우리는 다른 극단에 가 있다. 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 전에 우리 기업 지배구조의 정상화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건 난센스다.
 
◇삼성물산-엘리엇 공방일지(자료=뉴스토마토)
  
김영택·김동훈 기자 ykim98@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