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소비시장 정체 등으로 글로벌 경제성장의 속도가 둔화되는 가운데 여성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여성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7% 밖에 되지 않는다. 제너럴모터스(GM)와 야후 등 대형 글로벌 기업의 수장은 여성이지만 전 세계 주요 기업의 경영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겨우 넘는다. 한국과 독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대통령(총리)이 여자이지만 전 세계 정치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2%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늙어가는 세계에서 여성은 중요한 노동력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경제력이 확대되면 자연스레 그들을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소비시장이 열린다. 특유의 섬세함과 세심함을 가진 여성들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도움이 된다. 경제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인 부분에서 완전한 남녀평등을 이룬다면 28조달러의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95개국 중 45개국, 성별 불평등 심해
경영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최근 95개국에서 남녀의 직장 내 평등과 경제적 기회, 법적·정치적 동등성, 물리적 안전 등 4개 분야의 15개 항목에 대한 불평등 정도를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의 항목에서 매우 불평등하다는 평가가 나온 국가는 40곳에 달했다.
지역별로 보면 인도와 남아시아,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성평등지수(GPS)가 0.5를 밑돌며 불평등이 매우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GPS는 0에서 시작해 완전평등한 상태를 1로 규정하고 있다. 북미와 남미, 동아시아, 중국,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서유럽, 남아프리카의 GPS도 0.57~0.74 수준으로 불평등 정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지역의 성평등지수(GPS). 숫자가 1에 가까울수록 완전 평등함을 뜻한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은 불평등 정도가 매우 심한 지역, 주황색은 심한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전세계 여성 인구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자료/맥킨지
우리나라는 15개 조사항목 중 6개 항목에서 불평등 정도가 높거나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대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68%에 불과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은 남성 대비 83% 수준으로 적지 않았으나 여성임원 비율은 11%로 매우 적었다. 평균 임금의 경우에도 여성은 남성이 받는 돈의 43%만을 받으며 불평등 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차별 사라지면 경제성장률 26% 높아져
성차별을 해소하는 것은 단지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인 이득도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맥킨지는 향후 10년 동안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 ▲현재보다 빠른 속도로 개선되는 경우 ▲현재와 같은 속도로 변화하는 경우의 경제적 효과를 비교 분석했다.
우선 여성 차별이 완전히 사라질 경우 오는 2025년 전 세계 GDP 합계가 136조달러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현재와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면 GDP 합계는 108조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성차별 해소로 28조달러, 26%의 경제적인 효과가 추가로 나타나는 것이다. 28조달러는 2014년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의 GDP를 합한 숫자다.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현재보다 빠르게 개선될 경우 12조달러(11%)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됐다. 개선 속도는 각 지역에서 성평등이 가장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국가에 맞춰졌다. 유럽의 경우 모든 국가들이 스페인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남미는 칠레, 아시아 국가는 싱가포르만큼 빠른 속도로 변한다는 가정이다. 지금은 일본과 독일, 영국의 GDP를 모두 합해야 12조달러가 된다.
각 지역별로 보면 인도와 남미, 중국, 남아프리카, 북미, 중동·북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에서 11~16%의 경제성장 효과가 예상됐다. 비교적 여성의 경제 참여가 활발한 서유럽과 동유럽·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GDP가 8~9% 개선될 것으로 전망됐다.
맥킨지는 이 밖에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남성만큼 높아질 경우 GDP 성장률을 지금보다 54%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풀타임 여성 근로자 비율과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전문직 여성의 근로 비중이 남성과 같아질 경우 각각 23%의 추가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가전제품 공장의 여성 근로자들 모습. 사진=뉴시스/신화
맥킨지는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에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노동력 확보와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현재 6500만명인 일본의 노동가능 인구는 2025년 6300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지만 여성 노동력을 활용한다면 6400만명 수준으로 노동가능 인구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임원을 선임하는 것은 기업의 수익성에도 도움이 된다. 컨설팅 업체 그랜드손튼은 "S&P500 상장사 중 여성임원이 있는 곳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1.9% 수익을 더 냈다"며 "성별 다양성이 회사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며 투자자들은 이익향상을 위해 기업이 성평등에 힘쓰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승진의욕 꺾는 직장구조 바꿔야
흥미로운 점은 여성 스스로가 직장 내에서 임원이 되기를 꺼린다는 점이었다. 맥킨지와 비영리단체인 린인이 북미지역 118개 회사에서 3만여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위 간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은 43%에 불과해 53%인 남성보다 10%포인트 적었다. 승진을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한 남성이 78%, 여성이 75%로 큰 차이가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의외의 결과다.
맥킨지는 이 원인을 회사의 인사 구조에서 찾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남성과 여성은 대부분 비슷한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여성이 승진할 확률은 남성보다 15% 더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초기에는 회사의 핵심 부서에 배치됐다가 이후 주변부서로 밀려날 확률은 여성이 52%, 남성은 39%였다. 전문가들은 "중간관리자 직급일 때 핵심부서에서의 경험이 부족하면 이후 임원 승진을 앞두고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맥킨지는 이 같은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여성 임원과 남성 임원이 같은 비율을 이루는 데 까지는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여성 임원의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린인을 설립한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구에서 출발해 화성과 명왕성을 지나 다시 지구로 원점회귀하는 여행을 10번 반복할 수 있는 긴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성차별 해소를 위한 기업의 노력도 당사자들이 체감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를 대상으로 '자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성차별 해소를 중요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가'를 물었을 때 4곳 중 3곳이 '그렇다'고 대답했으나 같은 질문을 직원들에게 했을 때는 그 비중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셰릴 샌드버그는 "기업들은 우선적으로 성차별 해소를 위한 진척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목표를 세워야 한다"며 "이어 직원들이 성 차별·편견을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성차별 해소를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던 회사들은 지난 2년간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성평등 부분에서 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이 분야에서 다소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IT업체들도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핀터레스트는 지난해 40%였던 여성 고용율을 올해 42%까지 올린데 이어 내년에는 신규 취업자 중 여성의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트위터는 내년까지 전체 직원의 35%, 기술직 직원의 16%, 임원의 25%를 여성에게 할당할 계획이다. 현재보다 1~3%포인트 정도 높은 수준이다.
도미닉 바튼 맥킨지 글로벌경영담당 이사는 현재 회사의 성평등 정도를 명확한 숫자를 통해 판단하고 목표를 정한 뒤에는 임원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함께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단지 현재와 같은 업무환경에서 여성의 비율을 늘리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을 한다면 더 빨리 성평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을 위한 멘토링 및 스폰서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는 650개 이상의 기업에서 소규모 동료 그룹인 '린인 서클'을 운영하고 있다.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여성들이 커리어를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모임으로, 멤버 가운데 83%가 린인서클을 통해 새로운 도전이나 기회를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됐다고 말한다.
여성 스스로도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여성임원 중 단 10% 만이 4명 이상의 조력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이 비율이 17%로 훨씬 높았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은 대체로 사무적인 인간관계를 쌓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며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의 10~20%를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보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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