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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뿌려져 졌다
오늘 부는 바람은
2015-10-13 19:23:59 2015-10-13 19:23:59
1914년 미국 콜로라도 광산에 대규모 파업이 있었다. 록펠러가 소유한 광산이었다. 그가 급료를 대던 주방위군이 출동했다. 파업현장을 기관총으로 사격하고 밤에는 노동자 가족이 있던 천막촌을 방화했다. 여성 두 명, 아이 열한 명의 시커먼 주검이 이튿날 아침에 발견됐다. 학살의 장본인 록펠러는 악명을 씻으려 ‘선전의 대가’ 아이비 리를 고용했다. 그는 록펠러의 이미지를 탈바꿈시켰다. 10센트 동전을 늘 지니고 있다가 마주치는 걸인에게 나눠주는 연출 등, 아이비 리의 선전전은 잇따라 성공했다. 자선가, 사회적 기업가의 대명사 록펠러가 된 것이다.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것은 선전전이었다. 정부는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를 섭외했다. 장년층과 청년층의 페이소스를 감싸 안은 캐릭터를 연기했던 두 배우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정부의 입이 되었다. 한가위 때는 골목골목 플래카드 ‘노동개혁으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가 걸렸다. 정부·여당이 여론을 부추기면서 치고 들어간 것이다.
 
야당과 노동계는 저지선을 구축하지 못했다. 공동의 목표 ―예컨대 더욱더 쉬운 해고― 를 위해 일사불란이던 정부·여당 및 재계와 대조됐다. 양극화한 지 오래되어 분절된 노동시장에서, 연대 전선의 구축은 상당한 정치력을 요구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상용직과 임시·일용직,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갈린 노동 여건의 격차는, 그야말로 악조건이었다. 상용 정규직이 “해고는 살인이다” 외칠 때 취약 노동자 쪽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해고가 살인이면 나는 예수냐?” 공동의 저지선은커녕 위기에 관한 공감조차 어려웠다.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하다. 민주·한국노총을 조직한 상용 정규직과 달리, 취약 노동 계층에겐 조직력이 없다. 노동계의 약한 고리인 것이다. 여당은 이 지점을 정밀 타격했다. “정규직 과보호를 해소하자”는 여당 대표(김무성)의 일성은 신호탄이었다. 이내 임금피크제와 청년 고용의 연동을 주장했다. 재계와 노동계 사이에 있던 갈등의 구분선이 노동계 내부로 이동한 것이다.
 
청년 고용과 장년 고용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국내외 다수 연구의 결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5년 ‘신(新)일자리 전략’은 장년 고용과 청년 고용이 경쟁 관계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도리어 두 고용을 보완관계로 봤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의 첫 고용노동부 장관(방하남)이 폈던 주장이기도 하다. 정부·여당은 확실치 않은 것을 확신하는 투로 선전했다. 근거 없이, 청년 세대를 볼모로 잡은 것이다.
 
야당은 헤맸다. “재벌개혁을 먼저 하자”는 야당의 주장은 국민의 귓등에서 흘러내렸다. 갈등의 구분선이 노동계 내부로 이동했는데, 다른 데서 구호를 외친 것이다. 민주노총은 논의의 장 밖에 있었다. 상용 정규직 일부의 조직 한국노총이 노동계를 대표하게 됐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한국노총은 재계·정부·여당의 공세를 배겨낼 재간이 없다. 결국, 노동계가 절대 불가침이라 표시한 영역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까지 쭉쭉 밀렸다.
 
노동개혁은 무슨, ‘노동개악’이었다. 경영상 긴박한 이유를 요건으로 하는 정리해고와 달리 일반해고는 언제든 가능한 해고를 일컫는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의 변경을 불이익 변경이라 하는데, 해당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번에 그 요건의 예외를 둘 여지를 만들었다. 두 조항은 합법적으로 노동계를 ‘학살’할 수 있는 쌍끌이인 것이다.
 
무정한 억만장자 록펠러가 다정한 할아버지가 됐던 것처럼, 정부·여당·재계의 성공적인(?) 선전전이었다. ‘노동개악’은 ‘노동개혁’으로, ‘쉬운 해고’는 ‘공정 해고’로 탈바꿈했다. 대타협 합의문은 노동계의 항복문서였고. 뭉치지 못하고 흩어진 대가인 걸까. 칼 마르크스의 묘비석 문구, 뭇 노동자는 단결하라는 말이 쟁쟁하게 울리는 듯하다.
 
 
 
사진/바람아시아
 
서종민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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