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직장 내 괴롭힘' 방지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한정애 의원 발의…국회 처리는 '지지부진'
2016-01-03 10:51:32 2016-01-03 10:51:32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 '미생'에는 신입 4인방이 나온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합격'을 거머쥔 이들이다. 비좁은 문을 뚫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신입에게 돌아오는 건 상사의 담배 심부름과 욕설이다. 집단 따돌림도 벌어진다. 하지만 "밖은 지옥이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잡을 뿐이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송곳'은 한술 더 뜬다. 대형마트 관리자들에게 부당해고 지시가 내려진다. 그리고 성희롱과 사직 종용, 노동조합 탄압이 줄을 잇는다. "월급쟁이가 뭐 있나. 시키면 하는 거지"란 대사에선 씁쓸함이 묻어난다. 원작인 최규석 작가의 웹툰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버틴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시킨다고 다 할 수는 없다. 유럽은 인격 침해와 정신적 고통, 부당한 지시 등 직장 내 괴롭힘을 산업안전보건 차원에서 다룬다. 일부 국가는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특별법을 두고 있기도 하다. 일본도 지난 2011년 정부 차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 원탁회의'를 출범시켰다. 신입이라면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이거나, 직장인이라면 참아야 하는 불가피한 현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의 직장 괴롭힘: 그 실태와 영향' 보고서(2015.1). 출처/한국직업능력개발원
 
 
◇"사회경제적으로도 손실…손해배상 책임 등 법률로 규정"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은 지난 11월2일 직장 내 괴롭힘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손실도 가져온다"며 "손해배상 책임과 예방교육 실시 등을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용자나 근로자가 의도와 적극성을 가지고 다른 근로자를 지속적·반복적으로 소외시키거나 괴롭히는 행위 등 직위, 업무상의 우월한 지위 또는 다수의 우월성을 이용하여 다른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사용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실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함과 동시에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예방하고 해당 행위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를 신속하게 구제하려는 것임.
 
새로운 법안은 아니다. 같은 당 한정애 의원도 지난 2013년 9월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근 직장에서의 괴롭힘으로 직장 동료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음.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조직에도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실정임.
 
-사용자 및 근로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며 직장 내 괴롭힘 발생이 확인된 경우에는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하고,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것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12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1
 
◇"괴롭힘 억제하는 조직문화 조성 기여…산업현장 혼란도"
 
아직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크지 않다. 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2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이 의원의 법안도 정부·여당의 '노동개혁 5법'에 밀려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 소관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법 개정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산업 현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검토보고서'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 김양건(2015.12)
-그동안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법적 정의가 없어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이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고 노사·노노간의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음.

-개정안이 정의 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법적 개념으로 수용한 것은 괴롭힘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높이고 금지 의무를 명확히 설정하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 이를 통해 사용자 또는 근로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관련 각종 의무를 부과할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을 억제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조직문화 조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

-다만 직장 내 괴롭힘이 신체적·정신적 폭력이나 모욕, 협박을 수반하는 경우 가해자를 형사상 처벌할 수 있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 직장 내 괴롭힘을 억제하는 규정이 현행법 체계에 일부 구현되어 있다는 반대의견도 있고, 직장 내 괴롭힘의 실태와 유형 및 원인,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위한 교육 내용 및 방법 등에 관한 조사·연구가 부족한 실정에서 개정법률을 시행할 경우 산업현장에 미치는 혼란이 우려된다는 반대의견도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이 11월25일 국회에서 '사무금융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고 있다. 사진/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1건당 1548만원 비용 발생…노조 탄압 수단으로 진화"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서유정 부연구위원은 지난 11월1일 발표한 '한국의 직장 괴롭힘: 그 실태와 영향' 보고서에서 "근로자와 심지어 그 자녀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는 직장 괴롭힘은 근로자의 생산성을 떨어뜨림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비용 손실을 유발시킨다"고 했다. 서 부연구위원은 "직장 괴롭힘 1건당 1548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괴롭힘이 '퇴출 프로그램'이나 노조 탄압 수단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이 의원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지난 11월25일 '사무금융 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한 증권회사가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괴롭힘을 통한 인력의 상시적 퇴출을 설계한 사례도 드러났다. 사무금융노동자 조사연구팀은 "조직이 직접 가해자로 등장하는 퇴출형 괴롭힘, 노동자의 단결을 막는 노조파괴형 괴롭힘, 성과주의로 인한 괴롭힘 등 여러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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