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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최저임금을 올리면 국민이 웃는다
2016-05-27 06:00:00 2016-05-27 06:00:00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를 비롯한 4개 대학 연구진은 영국에서 최저임금이 도입된 1999년부터 10년간 5500가구, 개인 1만명을 표본 추출해 생활상태 등을 장기 추적 조사했다. 조사결과,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임금이 오른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항우울제를 복용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크게 좋아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임금이 오른 노동자들의 흡연율과 흡연량이 늘어나지 않았고, 노동시간이 짧아지거나 실직할 위험이 더 커지지도 않았다.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임금 상승으로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서 불안감과 우울증세가 완화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예 영국 정부는 국가가 복지비용을 감당하기 힘겨워지자 직접적인 복지비용 부담 대신 생활임금을 도입해 임금을 올려 국가경제를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달부터 25세 이상 노동자에게 기존 최저임금 6.7파운드에서 7.5% 인상된 시간당 7.2파운드의 ‘생활임금’을 전국에 도입했으며, 2020년 시간당 9파운드까지 올릴 예정이다.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은 노동당의 1999년 최저임금 도입 당시만 해도 극명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지만, 이후 최저임금을 올려도 실질적인 실업 증가가 나타나지 않자 지난해 5월에는 급기야 생활임금 도입을 총선 주요공약으로 내걸었다.

 

영국 사례 이외에도 미국, 중국, 일본, 독일까지 세계 각국이 앞 다퉈 내수경기 활성화와 양극화 억제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5달러까지 올릴 예정이며, 일본도 최저임금을 3%씩 올려 1000엔까지 인상할 계획이다. 중국은 2020년 중국 가계의 소득을 2010년의 두 배로 올린다는 목표 아래 월 최저임금 평균을 2010년 877위안에서 지난해 1564위안까지 5년 사이 2배가량 인상했다. 지난해 최저임금을 첫 도입한 독일도 8.5유로(약 1만300원)의 최저임금으로 약 400만명의 근로자가 임금이 상승했으며, 일부 지역과 직종의 경우 실업률이 줄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긍정적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아직도 최저임금 인상, 생활임금 도입에는 기업 부담과 일자리 감소라는 장벽에 막혀 더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알바노조 등이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며 대폭 인상을 요구했으나, 격론 끝에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놓은 결과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시 등 광역지자체 5곳, 기초 지자체 47곳이 현재 생활임금을 도입했으나 민간 부문 참여가 더딘 한계 속에선 효과가 제한적이고, 생활임금 금액 역시 대부분 시급 8000원을 넘기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이 내놓은 최저임금 공약에 그나마 한줄기 희망을 보였지만, 정작 생활임금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19대 국회 마지막 날 본회의에 회부되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342만명으로 최저임금 영향률은 18.2%에 달한다.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최저임금은 단순히 법적 개념이 아니라 그들의 실질임금을 규정하며, 이는 개인과 가정의 생존과 경제활동에 직결된다. 올해 최저생계비는 3인 가구 143만원, 4인 가구 176만원으로 최저임금 월 126만원은 여전히 이에 턱없이 모자르고, 서울시 생활임금 월 149만원도 3인 가구 최저생계비를 갓 넘길 뿐이다. 이제 곧 20대 국회가 문을 연다. 내수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는 상황 속에서 다가올 20대 국회는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을 외면하지 말고 우리 국민들에게 웃을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 수 있길 기대한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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