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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보석(步石)’ 경향신문 사건팀 기자 손가락 인터뷰
우리가 사는 세상 / 가능 사회
2016-06-13 19:20:25 2016-06-13 19:20:25
포스트잇은 본래 잠시 붙여놓는 메모다. 적힌 내용을 확인하면 더는 붙여놓을 이유가 없다.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수천 개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포스트잇에는 수천 개의 애도가 있었다. 잠시 붙여놓은 포스트잇이지만 여느 포스트잇처럼 떼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포스트잇을 확인했다.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할 테다. 강남역을 찾지 않더라도.
 
‘[강남역 10번 출구 포스트잇] 경향신문이 1,004건을 모두 기록했습니다’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은 강남역 외벽에 붙어있는 추모 포스트잇 1004개를 일일이 찍어 기록했다. 이에 지속가능 바람 기자단은 노고를 마다않은 손가락에게 ‘이달의 보석(步石)’ 상장을 지난 3일 전달했다. 상장을 받는 손가락 대표로 사건팀 김형규 기자를 서울 중부경찰서 앞 카페에서 만났다.
 
 
지속가능 바람 기자단이 ‘이달의 보석(步石)’ 상장을 전달했다. 사진/바람아시아
 
 
- 기사 반향이 큰데, 예상했나요?
반응은 예상 못 했지만 중요한 기사라고 생각했어요. 사건팀은 지역을 기준으로 적게는 세 개에서 많게는 네 개 담당 구역이 있어요. 강남 라인을 담당하는 후배의 보고를 받고 큰 사안이라고 생각했죠. 시작부터 커질 거라는 예상은 했어요. 가능한 모든 인력을 투입해서 취재했어요. 사회부가 7~8명 정도 되는데, 하루에 기사 3면 정도를 만들어요. 다른 기사를 써야 하는 한두 명 빼고는 전부 투입했다고 봐야죠.
 
- 1,004개를 다 기록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제가 직접 한 건 아니고, 사진 찍고 문자화하는 작업은 최근에 새로 들어온 막내 기자들이 했어요. 저는 포스트잇이 최소한 2~3,000개는 될 거로 생각했는데, 겹쳐서 안 보이는 것 외에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포스트잇을 전수조사하니까 1,003개였어요.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데만 두어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사진을 보고 일일이 문자화해서 취합한 다음에 워드 클라우드로 만들고 의미망 분석을 통해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눴어요. 추모, 애도가 가장 많았고,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 슬픔과 공포, 행동에 대한 약속, 다짐 순으로 많았어요.
 
-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것 같아요. 다른 신문사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인데, 누구 아이디어였나요?
제 생각에 아마 90% 이상은 팀장 제안이었던 것 같아요. 지면 기사보다는 모바일 전용 기사로 먼저 기획했었죠. 처음 이 기사는 포스트잇을 전부 다 찍어서 올리기로 했어요. 분량이 많아도 모바일이니까 가능하잖아요. 팀장이 그렇게 해보자고 아이디어를 던졌죠. 제가 워드 클라우드 형식으로 내자고 했고요. 모든 포스트잇 문구를 다 입력해서 어떤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지 의미망을 분석하는 기사가 되는 거죠.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지면 편집 회의에서 콘텐츠가 좋다고 지면에도 쓰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우리는 워드 클라우드를 만들었는데, 편집부에서는 실제로 포스트잇을 붙인 듯한 그림에 메시지를 담자고 했죠. 그 아이디어로 경향신문 1면 기사로 나왔죠.
 
- 강남역 사건을 언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듯합니다. 경향신문 사회팀에서는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판단해서 이런 기사를 쓰게 됐나요?
조심스러운데, 팀원과 팀장의 생각을 제가 모두 대변하는 게 아니니까요. 팀에서 합의된 내용 위주로 말할게요. 그래도 제 생각이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전제하고 이야기하면, 이 사건은 여성혐오로 바라보는 목소리가 분출된 게 핵심이라고 봐요. 기본적으로는 사건, 사고를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거로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여성혐오로 받아들인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죠.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언론의 역할이고요. 경찰은 ‘묻지마 범죄’라고 규정했어요.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거죠.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어요. 그 이견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어떤 것에 많은 사람이 동감을 하는지 등을 따져서 전달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여성혐오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 의견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서 이렇게 취재하게 됐습니다.
 
사건, 사고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
다양한 이견을 따져서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많은 사람이 여성혐오로 받아들인다면 귀 기울일 필요 있어
 
- 사건 팀에서 후속 기사 준비하고 있나요?
사건 단순보도를 넘어서 여성 혐오를 주제로 기획했었죠. 급하게 준비해서 매일 3면 이상으로 3회 정도 기사를 냈었어요. 당장은 여성혐오에 관해 기획한 기사는 없는데, 하나의 흐름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비극적인 사건에 모여서 추모하고, 시위하는 거요. 구의역 사고도 매일 퇴근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구의역에 나와서 침묵시위를 하더라고요. 이런 움직임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왜 그런지에 대해 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챙겨서 보도해야겠죠.
 
 
사진/바람아시아
 
- 책으로도 출간됐다고 들었어요. 책으로 엮게 된 계기나, 책에 대한 소개 간단히 해주실 수 있나요?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이 있었어요. 저작권 관련해서 민감한 부분이니까 변호사와 출판사에 많이 알아봤어요. 법적으로 크게 문제 될 부분은 없다고 하는데, 인세는 모두 기부하기로 하고 일을 진행했어요.
단지 이걸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여론이 있고, 그 목적으로 책도 내는 거죠. 강남역 10번 출구에 관해 아카이빙을 하는 트위터 계정이 생겼더라고요.  현장 집회에서 나왔던 발언들이나 포스트잇 문구들 하나하나 다 기록을 하는 거죠.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 그 작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했던 얘기들을 공유하고 나누는 게 중요하잖아요. 책으로 남기는 건 압축보관의 차원에서도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팔려서 인세가 많이 기부된다면 좋은 일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어디에 기부할지 여성단체, 포스트잇을 이관해서 장기보존하기로 한 서울시 산하 여성단체, 혹은 유가족 등 여러 방안을 생각했어요. 최종 결정된 것은, 전국 도서관에 기부하기로 했어요. 1쇄를 3천 부 정도 찍을 건데, 인세 나오는 대로 책을 다시 사서 전국 도서관에 비치하는 거죠. 누구나 집 앞 도서관에 가면 열람할 수 있게. 그게 애초에 책을 내는 취지에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 책의 구성은 포스트잇 내용 기록이 대부분인가요?
그렇죠. 일러두기 형식으로 책 탄생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는 게 두 쪽. 책 내용은 포스트잇 내용을 전부 다 그대로 옮긴 것이고, 맨 뒤에는 사건 팀 기자가 쓴 작업 후기, 여성학자 정희진 씨가 쓴 해제. 이렇게 들어가요. 책이 이미 나왔다고 들었는데, 아마 6일부터는 온라인에서 판매가 되는 거로 알고 있어요.
 
 
현재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붙은 포스트잇은 말끔하게 떼졌다. 추모공간이었던 강남역은 일상인 번화가로 돌아왔다. 늘 그랬듯이 잊힐 것이다. 수천 개의 포스트잇에 적힌 애도의 뜻과 분노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쉽게 붙고 떼어지는 것들이 아니다. 경향신문 사회팀 기자들의 손가락은 약한 포스트잇에 담긴 끈질긴 메시지를 기록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기록으로, 책으로 남은 시민들의 추모는 가까운 곳에 있다.
 
 
 
남경지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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