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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거센 '반세계화' 바람…세계화 패러다임이 바뀐다
소득불평등에 보호무역주의 부상…디지털·탈집중화로 무역질서에도 변화
2016-08-01 12:00:00 2016-08-01 12:00:00
'세계화'가 변화의 기로에 섰다.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19세기 초 비교우위 이론을 바탕으로 세계화를 주장했다. 자유무역이 투자를 촉진하고 기술을 발전시켜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 리카도의 주장이었다. 이후 200년 동안 전 세계는 국경 없는 자유무역을 위해 바쁘게 달려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석유파동 등을 겪으면서 굴곡이 없진 않았으나 세계화의 큰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소득불평등 심화, 난민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세계화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경제 전반을 잠식하는 디지털화도 세계화 양상을 바꾸고 있다.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반세계화(anti-globalization) 바람이 세계 곳곳에서 불고 있다. 미 공화당의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달 21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수락 연설을 하면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천명했다. 신고립주의를 걷겠다는 뜻으로, 공화당의 전통적인 철학이자 시장경제의 원칙이라 할 수 있는 개방과 경쟁을 버린 셈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탈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불법 이민자 차단을 위한 장벽 건설, 무슬림 입국 제한, 시리아 난민 수용 불가 입장을 담은 공약도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1일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하며 사실상 신고립주의를 선언했다. 사진/뉴시스·AP
 
민주당의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29일 후보수락 연설에서 이민자 및 무슬림을 차별하는 트럼프의 배타적 공약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중국에 맞서 미국의 제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공정한 무역협정에 대한 반대의사를 강조했다. 클린턴은 오바마 행정부가 진행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의 대선 정강에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경쟁을 중단하고 미국 내 일자리를 지키는 무역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 담겨있다. 사실상의 보호무역주의다. 
 
영국에서는 이미 지난 6월 과반이 넘는 국민들이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EU에 대한 불만, 난민 유입으로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원인이었다. 프랑스에서도 극우 성향이 두드러지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FN)이 약진하고 있으며 스페인에서도 극좌 정당으로 분류되는 포데모스가 지지율을 높이고 있다. 이탈리아의 제1야당 오성운동(M5S)도 포퓰리즘과 민족주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정당이다. 
 
세계화에 대한 반감은 정치권을 넘어 다른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최근 각국에서 잇따르는 반세계화 테러 사례를 비롯해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도 보수화와 고립주의가 두드러진다"며 "경제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2년간 세계 각국 정부가 취한 보호무역 조치가 20% 가까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평균 6%씩 증가하던 국제교역량은 2009년부터는 성장세가 3%로 줄었다. 스테판 S. 로치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 대표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 글을 통해 "금융위기와 더딘 경기회복의 영향으로 국제 교역량 증가폭이 크게 줄어들면서 세계화에 대한 저항만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국가 내 소득불평등 심화, 세계화에 불똥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반세계화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국가 내의 소득 불평등 심화다. 과거 반세계화 운동은 대체로 국가 간 소득불평등 때문에 발생했다. 반세계화를 주도했던 것도 대체로 베트남, 쿠바 같은 후발 개도국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반세계화 양상이 더 거세다. LG경제연구원은 이에 대해 "일자리 상실, 소득 감소 등에 직면하는 선진국 경제주체들의 불만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구소련이 해체되며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자 세계화는 급물살을 탔다. 중국, 베트남의 노동력과 서구의 자본이 만나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후발 국가들이 많은 수혜를 입으며 국가 간 경제적 불평등은 다소 개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시장의 통합과 후발국의 부상은 일부 선진국 경제주체에게는 하향 압력으로 돌아왔다. 중국 등 아시아 저개발 국가들에서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이 공급되면서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생산거점을 빠르게 옮기지 못한 일부 기업은 파산했다. 시장개방의 범위가 상품에서 자본, 인력으로 넓어질 때마다 후발국가에 비해 경쟁력이 약한 선진국의 산업은 쓴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쌓인 불만이 현재의 시점에서 투표를 통해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김형주 연구위원은 "나라 안에서는 모든 유권자가 한 표씩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며 "경제 전체 관점에서 아무리 이익이 큰 정책이라도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제주체가 절반을 넘는다면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경제적인 손해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도 이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디지털·탈집중화에 기존 세계질서 '흔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산업 시스템의 변화 때문에 세계화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지금의 반세계화 흐름은 디지털화와 탈집중화에 따른 변화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세계화는 변화를 겪으면서도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 ▲특정한 경제 중추의 부상 ▲세계화에 대한 우호적인 정치 환경이라는 세가지 특징을 유지해왔다. 1800년대 열강들의 식민지화로 촉발된 세계화는 증기기관(기술)과 서유럽(경제중추)이 이끌었다. 1950년대 기계화를 통한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한 세계화는 미국이 주도했고, 1980년대 이후 세계화의 주역은 중국의 노동력과 인터넷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전 산업에 걸쳐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세계 무역의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먼저 디지털화가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개념을 바꿨다. BCG는 제조업의 디지털화로 한국과 독일, 미국, 중국 등에서 근로자당 생산량은 30% 늘고 필요한 노동력은 30%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한 해외진출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기업들은 효율성이 높아진 자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리쇼어링을 할 것인지, 물류비를 들이더라도 해외의 값 싼 공장을 유지할 것인지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하는 시점이 됐다. 
 
산업의 디지털화와 탈집중화가 세계화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장에 전시된 스마트 팩토리 모습. 사진/뉴시스·신화
 
무역 품목도 달라졌다. 지금까지 세계 무역을 주도해왔던 상품 교역량은 정체되는 반면 디지털·서비스 분야의 교역은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1980년 전체의 17%에 불과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서비스 교역 비중은 지난 2014년 25%로 크게 높아졌다. 또 최근의 디지털 기술은 제품과 서비스의 경계를 흐리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급격한 발달은 기존의 국경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모델도 흔들고 있다. 오늘날 아마존과 알리바바라는 거대 플랫폼을 통하는 교역량만 7000억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순위 19위인 스위스 경제보다 더 크다. 대형 플랫폼은 과거의 복잡했던 공급체인도 단순화시키고 있다. 작은 기업이라도 플랫폼만 통하면 세계 각국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중소기업을 전 세계의 소비자 및 공급자와 연결해 기업들은 개별적인 공급체인을 구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던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말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G7에서 G20으로 다원화되고 있는 국제 사회의 힘의 균형도 과거와 같은 세계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WTO를 주축으로 하던 세계 무역 질서도 TPP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특정 지역끼리 체결한 무역협정은 1995년 50개에서 오늘날 280개로 급증했다. 금융 측면에서도 IMF와 세계은행(WB) 이외에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신개발은행(NDB) 등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세계화 새 국면…패러다임 바꿔야
 
세계화가 변화의 기로에 선 것은 맞지만 종말을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은 "세계화의 속도 조절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겠지만 세계화 흐름 자체를 되돌리는 상황으로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BCG도 "세계화는 끝난 게 아니라 달라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달라진 상황에 맞춰 세계화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꿔야 한다. 특정 시장과 기술이 이끄는 일원화된 세계화에서 다원화되고 다극화된 세계화로 시각을 변경해야 하는 것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 등 일부 기업들은 이미 세계화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제프 이멜트 GE 회장은 지난 5월 새로운 세계화 전략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힘을 얻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역화 전략을 통해 구심점을 강화해야 한다"며 "미래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큰 틀의 세계화 속에서 지역에 특화된 역량을 발휘하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BCG는 새로운 세계화 시대에 "기업들은 다양화된 경제와 지배구조, 규칙, 기술 등을 다룰 수 있어야 할 것"이라며 "(철도 건설 같은) 물리적 세계 통합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겠지만 데이터가 보이지 않는 새 길을 만들고 클라우드 컴퓨팅이 새로운 컨테이너와 창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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