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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슈퍼 갑'인데…'납품단가' 더 강한 처방 있어야"
중기업계, 정부 현실화 방안에 실효성 의심
"민간하도급시장서도 즉각 연동 강제해야"
2018-04-05 16:43:45 2018-04-05 16:43:45
[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5일 여당과 정부가 중소기업 납품단가 현실화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중소기업계는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특히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공공조달시장과 달리 민간하도급시장은 실질적으로 대기업 등 원청업체를 강제할 규정이 전무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업계는 정부가 민간하도급시장에서 대기업의 자발적 협력을 유도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을 즉각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중기부는 이날 오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으로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크게 늘어났지만 제도적 한계와 관행 등으로 인건비 인상액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며 납품단가 현실화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납품가격에 최저임금 인상 등이 즉시 반영될 수 있도록 공공조달시장에서 선도적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한 뒤 대기업 등이 원청업체로 있는 민간하도급시장으로 확산시킨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는 "법제도적 접근만으로는 근본적인 납품단가 후려치기 근절에 한계가 있는 만큼 공공부문의 납품단가 현실화가 민간부문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대기업이 공정원가를 납품단가에 자발적으로 반영하는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다"고 논평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없애려면 기업문화의 대폭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당정 협의 내용에 따르면 한국 대기업과 일본 대기업에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은 최저임금 인상 직후 일본 대기업에서는 임금 인상분을 원가에 즉각 반영해달라는 연락이 먼저 왔다고 한다.
 
반면 국내 대기업은 아무리 원가 현실화를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당정은 기업문화 차이, 계약 관행 등 사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의 구매담당자 또한 하도급 업체를 쥐어짜 원가를 줄여야 좋은 평가를 받는 시스템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관계자들은 주장했다.
 
중기중앙회의 원론적인 입장과 달리 실제 뿌리산업 현장을 대표하는 단체들은 정부의 민간하도급시장 납품단가 현실화방안에 쓴소리를 냈다. 대기업-중기 사이의 근본적인 갑을문화 개선이 없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또 정권이 바뀌었지만 현장에서는 대기업의 상생 의지를 느끼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주물업계는 90% 이상이 민간하도급시장에서 거래한다"며 "대기업의 자발적 협력 유도는 말이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 변동에 맞춰 인건비상승분을 정당하게 납품단가에 즉각 반영될 수 있도록 강제 규정으로 못 박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을 이유로 보복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추가돼도, 조정협의 신청하는 즉시 기업명이 노출되고 거래선은 끊기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보복금지 조항 확대는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며 "대기업은 조정신청을 한 기업과 바로 거래를 끊지 않는다. 향후 물량 조절을 하고 품질이 좋지 않다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로 보복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중기업계는 있는 제도를 활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품질 불량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게 되면 몇 년은 걸리고 기업은 문을 닫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중기부 등에 따르면 현행법에서도 조정협의를 신청하면 원사업자는 협의에 나서는 게 의무다. 이후 원사업자가 거부 시 공정거래조정원 등을 거쳐 공정거래위 직권 조사 사항이 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거래가 끊길지도 모르는 상황을 뒤로 하고 기업명을 노출하면서까지 조정협의 신청으로 가는 사례가 전무하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민간하도급시장이 100%에 가까운 단조업계 또한 주물업계와 비슷한 상황이다. 박권태 한국단조공업협동조합 전무이사는 "대-중소기업의 하청시스템에서는 어떤 제도를 가져와도 납품단가 현실화가 힘든 게 사실"라며 "슈퍼갑과 슈퍼을이 싸우는 구조로 정부가 바뀌어도 대-중소기업 간 갑을문화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전무는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주문했다. 그는 "공공조달시장에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동반성장 평가를 민간 쪽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동반성장위원회가 동반성장 지표로 대기업을 모니터링해 원가상승 요인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정기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중기부 관계자는 "납품단가 조정협의신청을 이유로 보복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은 대기업 등에게 분쟁 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전적 억제 효과뿐만 아니라 납품단가 현실화를 이끄는 유인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영향 아래에 있는 공공조달시장에서 납품단가 현실화 방안을 실행한 뒤 단계적으로 민간 쪽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민간하도급시장에서의 납품단가 현실화를 위해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도 향후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단조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2013~2017년 단조산업 매출액은 연평균 1% 성장하는 데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6%에서 3.9%로 쪼그라들었다. 조합 측은 최저임금이 매년 인상되는 데 반해 대기업 납품단가는 몇 년째 멈춰있다며 납품단가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중견기업 협력업체가 많은 주물업계 또한 최저임금, 원자재가격 상승에도 납품단가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주물업계는 최근 5년 동안 평균 매출이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최저임금 납품단가 반영 당정협의가 진행됐다.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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