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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강용남 한국레노버 대표 "VR 헤드셋 등 미래기기로 포스트 PC시대 열겠다"
시장 축소되는 PC 대신 교육용 VR 차세대 먹거리로 낙점
"긍정 마인드·경청·유연함이 회사와 개인 삶에 큰 도움"
2018-05-09 06:00:00 2018-05-09 06:00:00
[뉴스토마토 이지은·왕해나 기자] PC시대 중심에는 '레노버'가 있었다. 2005년 IBM PC사업을 인수한 레노버는 8년만인 2013년 세계 1위 PC업체로 등극했다. IBM PC사업 인수 이후에도 2011년 일본 NEC와 합작법인을 만들고, 독일 PC업체 메디온(Medion)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 후지쯔 PC 자회사 후지쯔 클라이언트 컴퓨팅 리미티드(FCCL)를 인수했다. 20만원대 아이디어패드 노트북부터 200만원대의 프리미엄 제품인 싱크패드까지. 선택의 폭을 넓혀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PC시장을 호령하던 레노버가 변화하고 있다. 1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인 PC시장을 뒤로하고 가상현실(VR) 헤드셋 등 미래기기 분야로 사업을 확대 중이다.  포스트 PC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포문이다. 국내에서는 교육용 제품을 중심으로 VR 헤드셋 시장을 적극 공략할 방침이다. 주력이었던 PC업체 이미지를 벗고 스마트 디바이스 회사로 발돋움하는 중심에는 강용남 한국레노버 대표가 있다. 그는 2012년10월부터 회사를 이끌며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고, 유연한 사고를 통해 한국레노버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최근 강남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강용남 한국레노버 대표. 사진/한국레노버 
 
6년째 수장을 맡고 있다. 이 자리까지 이끈 원동력은 무엇인가.
살아오면서 항상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존재했다. 매일 위기도 있고, 기회도 있는 셈이다. 위기와 기회는 한 끗 차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항상 세 가지 마음가짐을 지녔다. 첫 번째는 긍정적으로 보려고 했다. 위기가 오면 몇 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곱씹었다. '위기'에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위기를 줄이는데 도움이 됐다. 두 번째는 '기회'가 왔을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마인드가 중요했다.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개선하고, 작은 기회라도 받아들이려 하다 보면 때로는 큰 기회가 되기도 했다. 세 번째는 '유연함'이다. 가장 필요한 마인드다. 대표는 결정권만 가지고 있고 평사원은 주어진 일만 해야 한다면 수직구조로 굳혀진다. 미국처럼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회사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위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것. 이는 회사를 이끌 때나 개인적인 삶을 영위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유연함'의 가치관을 회사 문화에도 적용하고 있나. 
젊은 조직을 꾸리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조직이 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숙한 사람들만 모여 있으면 자기 생각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해, 조직이 유연해질 수 없다. 반면 젊은 사람일수록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가령 우리나라 대기업은 성숙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상하구조가 있는 문화가 자연스레 조성된다. 반대로 미국에서 오피스가 없는 기업들을 보면 평균 연령이 35세 이하다. 훌륭한 리더와 유연한 사고의 젊은 사람들, 즉 배울 수 있는 사람과 따라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회사의 전반적인 문화가 바뀔 수 있다.
 
한국시장 경영에서는 어디에 중점을 뒀나.
국내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에 반응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응을 안 한다. 신제품을 출시하면 한 달 동안 판매되는 것이 전체 실적과 연계된다. 독특한 시장이다. 외국은 신제품이 1년에 한 번씩 나올 경우 1년 동안 꾸준히 판매되는 경우가 다수다. 국내 대기업들은 신제품 출시와 맞물려 TV 광고나 간접광고(PPL) 등 마케팅을 강화해 승부를 본다. 제품 출시 초기 마케팅을 강화해 초반에 제품 판매를 늘리는 식이다. 한국레노버는 이와 달리 다품종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국내 시장만큼은 한 제품으로 1년 동안 팔기보다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으로 경쟁력을 쌓으면서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이제는 PC 제품의 다양화를 넘어 VR·증강현실(AR) 기기로 확장하는 단계까지 왔다.
 
탈(脫) PC를 외치고 있다.
PC시장에서 1위를 혹은 2위를 하기도 한다. 처음 대표직을 맡았을 때는 1위 유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장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있다. PC시장은 감소하고 있다. 크게 성장하지 않는 시장에서 1위를 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태블릿, 스마트폰, VR·AR 기기 등 다른 디바이스가 (전체 매출 가운데) 늘어나는 비중이 훨씬 커지고 있다. 레노버에 대해 PC 전문 회사라는 이미지로 기억하는 소비자가 많지만 실제로는 종합적인 컴퓨팅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를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연구개발(R&D)의 무게 중심으로 인공지능(AI)에 두고 있다. 스마트홈·스마트오피스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스마트 스피커, VR 헤드셋 등 미래 기기 분야로 영역을 적극 확대하기 위해서다. 특히 국내 시장은 VR 헤드셋에 집중하고 있다. 
 
포스트 PC로 꼽고 있는 VR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3개월 내 VR 헤드셋 '레노버 미라지 솔로'를 출시할 예정이다. 미라지 솔로는 스마트폰이나 PC 연결 없이도 작동 가능한 독립형 VR 헤드디스마운트디스플레이(HMD)다. 미라지 솔로는 구글 데이드림 플랫폼을 장착해 기존 300여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한글 콘텐츠는 약 40여 개며 데이드림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활용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미라지 카메라'를 활용하면 실시간 스트리밍과 이미지 및 비디오 촬영도 가능하다. 현재 초등교육을 담당하는 콘텐츠 파트너와 제휴, 초등교육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VR을 게임 관점으로 보면 콘텐츠 부족이라고 얘기하지만 생활·교육용 측면에서 보면 무궁무진하다.
 
레노버 미라지 솔로 및 미라지 카메라. 사진/한국레노버
 
왜 교육용인가.
40만~50만원 선의 VR 기기를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판매하면 보급화하기 쉽지 않다. 초기 시장인 VR 기기의 시장 안착을 위해 기업과 정부 간 거래(B2G)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 특히 다양한 계층에서 소비자 접점을 늘려 효과적으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교육시장에 주목했다.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학습하는 시간이 포함된 디지털 교과서가 교과과정에 도입되고 있는 점도 시장 확대를 위한 긍정 요인으로 봤다. 그동안 VR 기기 시장은 게임으로 연계됐다. 게임은 사치성 엔터테인먼트다. 얼리어답터를 중심으로 보급되다 보니 보급률이 낮았다. VR기기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지만 VR 기기로 게임을 하는 건 중독성이 약했다. 한 시간 이상 하면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용 시장은 다르다.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 학습 타깃이다. 게임과 달리 인체에 무해하다. 시청각 자료로 보던 우주체험을 실제같이 경험해보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제품 판매 과정에서도 남다른 신념이 있다고 들었다. 
제품을 잘 팔기 위해서는 어떻게 쓰는 제품인지 잘 알려야 한다. 가격, 제품 스펙만 제시해 놓으면 새로운 제품은 팔리지 않는다. 신기한 것이 많이 나오는데 몰라서 못 사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나아가 제품은 밀레니얼 세대에만 파는 것이 아니다. 기성세대도 새로운 제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직관성을 높여야 한다. 가령 에어컨이 예전에는 버튼 몇 개로 조정했지만 지금은 스크린에 다양한 버튼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음성으로도 조정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편리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기성세대는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품의 사용성을 상세히 알리는 것, 제품을 쉽게 만드는 것을 글로벌 판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레노버가 'PC 회사다. 매출이 줄고 있는 회사다. 쉬운 기술을 가진 회사다'. 이렇게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개인적 욕심이다. 우리가 가진 장점, 능력, 왜 우리가 이걸 하는지, 어떻게 할 건지 보여주는 게 목표다. 우리의 사업이 긍정적으로 비쳐야 직원들도 힘이 날 것이고, 시장에서도 환영받을 수 있다. 우리는 (PC만 하는) HP, 델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지은·왕해나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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