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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휴머니즘의 기적
2018-06-05 06:00:00 2018-06-05 06:00:00
문학계의 대부 빅토르 위고는 세기의 휴머니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레미제라블>에서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휴머니즘(humanism·인본주의)의 숭고한 소유자들을 그리고 있다. 휴머니즘은 인간을 목적으로 삼고 인간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사실 휴머니즘이라는 용어는 1765년 시민일지(Ephemerides du citoyen)에 처음 등장했다. 이는 ‘인간애(amour de l'humanite)’를 의미하며 이후 독일의 교육철학자 프리드리히 니트함머(Friedrich Immanuel Niethammer)가 휴머니즘을 박애주의와 구분해 헤겔의 칭찬을 받았다.
 
그렇지만 인간애를 보편화시킨 사람은 프랑스 사회당 창시자인 장 조레스(Jean Jaures)였다. 조레스는 1904년 뤼마니테(L'Humanite)라는 신문을 만들어 인간애란 단어를 보급했고, 이때 인본주의라는 단어 또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장 폴 사르트르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을 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나친 산업화와 기술혁명은 휴머니즘을 퇴색시키고 있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일상을 기계화하고 사람 중심의 휴머니즘을 앗아 간다. 그러나 다행히도 휴머니즘만큼 인간에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자신이 태어난 아프리카를 떠나 서유럽으로 온 불법 이민자들도 그 예다.
 
지난 5월26일 프랑스에서는 4층 발코니에 매달려있는 한 아이를 구한 말리출신 마무두 가사마(Mamoudou Gassama)의 영상이 전국을 강타했다. 파리 근교 몽트뢰이(Montreuil)에 사는 22세의 마무두는 모국 말리를 떠나 부르키나파소와 니제르, 그리고 리비아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로 숨어 들어와 하루하루를 살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불법 이민자였다. 그는 경찰에게 잡히면 즉시 자신의 모국 말리로 송환될 처지였지만 4층 발코니에 매달려 있는 아이를 구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마무두는 1층에서 아이가 있는 4층까지 불과 30초 만에 뛰어올랐고, 이 영상을 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그를 ‘스파이더맨’이라 부르며 영웅으로 취급했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8일 아침 엘리제궁으로 불러 프랑스로 귀화할 것을 제안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신은 귀감이 되었다. 국민이 감사를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과 함께 용기 있고 헌신적인 행동에 대한 상장과 메달을 수여했다. 이에 대해 마무두는 “기쁘다. 이와 같은 트로피를 받는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다”라고 감격했다. “나는 그 꼬마를 구하겠다는 생각만 했고, 신이 도와 그 꼬마를 구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 마무두의 말이다.
 
튀니지 출신 니자르 하스나우이(Nizar Hasnaoui)는 2015년 10월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에 살인적인 홍수가 났을 때 자동차에 갇힌 4명의 프랑스인을 구했다. 프랑스는 그에게 보답으로 체류증을 주었다.
 
마무두처럼 불법 이민자였던 니자르는 2012년 몰래 프랑스에 들어와 숨어살며 경찰의 추적을 피해야만 했다. 또한 그는 헤엄을 칠 줄 몰랐다. 그러나 홍수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서슴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4명의 생명을 구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니자르는 불법 이민자 신분을 벗었다. 그는 매년 체류증을 갱신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프랑스로 귀화할 수 있길 기도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숨어살지 않아도 되는 니자르는 구름 속에 사는 느낌이다. 프랑스 체류를 공식적으로 허락받은 이후 그의 생활은 완전히 변했다. 전에는 경찰을 비롯해 모든 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지금은 평온히 외출할 수 있다. 그는 카페에 평온히 앉아있을 수 있고, 음식점에서도 마음 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불법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청소 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니자르는 동료와 같이 아파트를 공유해 지내고 있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불법 이민자가 되었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 만큼은 간직했던 그들은 신이 부여한 초인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이웃을 구했다. 그 결과 그들은 햇빛을 받으며 거리를 마음 놓고 행보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연민을 품고 사랑의 힘을 발휘하는 휴머니즘. 이는 인간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자 세상을 환희 비추는 빛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이 순간만큼이라도 이웃들을 한번 살펴보라. 거처가 없는 노숙자들, 고독한 노인들, 허기진 아이들, 실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주위에 있다면 그들에게 안부인사라도 건네면서 손을 내밀어 줘라. 휴머니즘만큼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휴머니스트인 시몬 베이(Simone Weil)는 “진리란 내 이웃의 불행(malheur)에 애정과 관심(attention)을 갖는 것이다”고 말했다. 거창한 진리를 찾으려 말고 이 작은 진리부터 실천하라. 그러면 대한민국의 자살률부터 감소할 게 분명하다.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나라는 전도가 양양하다. 역으로 그렇지 않은 나라는 희망이 없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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