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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이웃과 가족들이 평범한 하루 살며 만든 역사"
문 대통령, 역대와 다른 현충일 추념사…순국선열·호국영령 대신 이웃·가족 언급
2018-06-06 14:27:35 2018-06-06 14:27:35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국립대전현충원에서 19년 만에 열린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똑같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했는데도 신분 때문에 차별받고 억울함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추념식장 선정과 문 대통령 추념사 내용, 행사 구성 면에서 평범한 국민들의 용기를 높이 사고 변화된 보훈의 의미를 강조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문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사 도입부에 “대한민국의 역사는 우리의 이웃과 가족들이 평범한 하루를 살며 만들어온 역사”라고 강조했다. 역대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나 한국전쟁 전사·부상자를 주로 기리고 애국심을 강조했던 것과 달랐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자신이 살던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자 건물 곳곳을 돌며 이웃들을 깨워 대피시키던 중 사망한 ‘초인종 의인’ 고 안치범 씨를 비롯해 이웃을 구하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했다. 그러면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서로 아끼는 마음을 일궈낸 대한민국 모든 이웃과 가족에 대해 큰 긍지를 느낀다”며 “서로를 아끼고 지키고자 할 때 우리 모두는 의인이고 애국자”라고 언급했다.
 
과거 대통령 연설문에서 다수 등장했던 ‘순국선열’, ‘호국영령’ 등을 대신해 ‘이웃’과 ‘가족’ 등의 단어가 되풀이된 것도 특징이다. 기존 냉전체제 문법을 벗어나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걸맞는 애국관을 투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보훈의 의미를 ‘국가를 위한 헌신에 대한 존경’으로 규정하며 “이웃을 위한 희생이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이 새기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행사장 선정에서부터 이런 의도가 엿보였다. 국립대전현충원은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는 물론 의·사상자와 독도의용수비대, 순직공무원 묘역까지 조성돼 있다. 청와대 측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헌신한 사람들을 기리겠다는 의미를 보여주기에 제격이라는 판단 하에 대전현충원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추념식 후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구조활동 중 사망한 3명의 소방관(고 김신형·김은영·문새미) 묘비 제막식에도 참여했다. 순직 공무원을 비롯해 다른 이들을 구하다가 사망한 의인들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 낭독에 앞서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고 김기억 중사가 안장된 무연고 묘지를 참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가족이 없어 잊혀져가는 국가유공자를 국가가 잊지 않고 기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대한민국은 결코 그 분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기억하고 끝까지 돌볼 것”이라고 약속했다. 현 정부들어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대전현충원 내 천안함 46용사 묘역도 별도로 찾아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소홀했던 각종 보훈정책을 지속 정비해나가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국가보훈처를 장관급으로 격상시켰고 보훈 예산규모도 사상 최초로 5조원을 넘어섰다”고 강조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지난 1월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자녀·손자녀 대상 생활지원금 제도를 신설한 바 있다. 관련 예산 526억원을 반영해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자녀·손자녀 중 가구당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일 경우 46만8000원, 70% 이하일 경우 33만5000원을 매월 지급한다. 지난 달에는 국가유공자의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유공자 지원에 관한 법률 등 10개 법령 개정을 완료한 상태다.  
 
정부가 내년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관련 사업에 힘을 쏟는 가운데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 충칭시에 설치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복원은 중국 정부의 협력으로 내년 4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관련사업 추진 가능성을 밝혔다. 미군 등 해외 참전용사 유해를 포함한 비무장지대 내 유해발굴 사업이 그 예다. 문 대통령은 “애국과 보훈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일 수 없다”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에 국민들께서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한 후 유족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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