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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2018년 8월,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계절을 지나며
2018-08-28 06:00:00 2018-08-28 06:00:00
“오랜 역사에 걸쳐 양국은 깊은 이웃관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遺憾)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의해 야기된 불행한 시기에, 귀국의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저는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왜 아직도 이 두 개의 인용문이 내 귀에 생생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요원하게만 느껴지는 한일 관계 때문일까. 2018년 8월은 폭염을 잠재워줄만한 시원한 바람을 찾지 못한 채 답답한 계절을 서성거리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들 인용문은 일왕이 당시 일본을 찾은 한국의 대통령에게 일제가 과거 한국에 행했던 강제 점령의 역사를 사과하는 문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앞의 것은 1984년 9월 6일, 궁중 만찬회에서 히로히토(裕仁, 1901~1989) 일왕이 당시의 전두환 대통령에게 한 사과문의 한 부분이고, 뒤의 것은 1990년 5월 24일, 당시의 노태우 대통령에게 히로히토의 아들인 아키히토(明仁,1933-) 일왕이 직접 발표한 연설문의 일부다. 언급된 “통석의 염”은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단어인데, 이를 일본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몹시 애석하고 심히 유감스러운 생각“이라는 뜻으로 옮길 수 있다.
 
이 문장들도 벌써 34년과 28년이라는 나이를 먹어버렸다. 물론 이 사과의 장면을 목격한 당시의 한국인들은 이 표현들이 과연 일왕이나 일본의 진심에서 우러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었지만, 그래도 일본이 패망하고 난 후, 사실상의 전쟁 지도자였던 히로히토 일왕의 공식적인 첫 사과라는 점에서, 또한 아키히토 일왕의 의지를 담아 일본 정부가 마련한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각각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기류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와 병행하여, 당시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1918-) 총리의 "한국인에게 큰 고난을 준 것에 깊은 유감"이었다는 사과, 그리고 "과거 일본의 행위로 한국인에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경험하게 한 것에 겸허히 반성하고 솔직한 사과를 한다“는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1931-) 총리의 발언이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2018년 8월 15일,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인이 말하는 ‘종전일(終戰日)’ 추도식에서, “전후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의 세월을 생각하며,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추도사를 발표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그동안 꾸준하게 일제 강점기에 대한 반성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날의 문장은 그리 새롭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더불어, “일제가 아시아 여러 나라에 고통을 주었다”는 요지의 과거 일본 총리들의 반성적 표현이 아베 신조(安倍晉三, 1954-) 총리의 발표문에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 또한 그리 어색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몇 년째 ‘진심을 담은 반성’과 관련한 언급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1995년 8월 15일 일본 총리가 발표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이른바 ‘무라야마(村山, 1924-) 담화’가 떠오르는 것은 여전히 진일보 하고 있지 않는 한일관계에서 오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후 2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역사는 답보와 퇴보의 길을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 란 바로 이런 것일까.
 
2018년 8월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는 올해도 어김없이 전쟁 책임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꺼리는 상당수의 일본 정치가들을 맞아들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자들의 영령을 기리는 참배를 행했다. 양국에서 한일관계의 긍정적 발전을 위한 제안과 처방이 쏟아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답답하게도 실천은 쉽지 않아, 여전히 평화를 갈구하는 미래지향적인 해법은 공허한 메아리로 허공을 떠돌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헛되이 흘러가기만 하는 세월을 탄식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슬픔이 점점 더 짙어져만 가는 8월이 속절없이 저물어 가고 있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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