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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사이)남녀평등 위해 고정관념부터 바꿔야
2018-08-28 06:00:00 2018-08-28 06:00:00
요즘 서점에 나가보면 페미니즘에 관한 책들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주목되는 이슈가 이 분야란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 어디 이뿐인가. 성희롱·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운동의 사회적 확산, SNS 상의 여성 커뮤니티 활동 등 여성인권 회복을 위해 조직적인 운동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간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도구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따라서 남녀평등 관점에 입각해 대한민국 사회시스템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부 극단세력들의 활동을 과연 페미니즘 운동으로 볼 수 있을까. 페미니즘이란 정치, 철학, 사회적 관점에서 한 가지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남성과 여성 간 법적으로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서 평등함을 정의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한다. 따라서 페미니즘 운동은 여러 영역에서 여성이 희생해야 하는 불평등을 청산하고 여성 인권을 격상시키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와는 달리 한국의 일부 단체들은 ‘생물학적 여성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남녀가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 건설보다 남성에 대한 혐오를 자극해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 구습을 벗어나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보다 더 인격적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생물학적인 하드웨어보다 정신적 소프트웨어를 바꿔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 서구에서는 남녀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바꾸는데 한창이다. 그 한 예가 인간의 스테레오타입(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다. 그간 비행기 조종사는 대부분 남자로 그려졌으며 이들은 영웅적 이미지에 거친 생활을 연상시켰다. 이런 직업에 대한 사고방식을 무너뜨리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왜 아직도 조종석에는 여성들이 드문 것일까. 국제 민간항공기구에 따르면 세계 전문 조종사의 3% 만이 여자다. 조종사 부족으로 안정적인 비행인력 수급이 위험에 처하자 여성조종사협회는 여성 지원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제 민간항공기구는 지금부터 2036년까지 국제선을 조종해야 할 조종사는 약 6만2000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80%의 조종사가 노령화 되고, 앞으로 15~20년 후 여행객 수는 배로 증가해 항공교통 연간 이용자 수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구는 청년들, 특히 젊은 여성들을 채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직업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중이다.
 
1980년대 초, 기내에서 성차별적 언급은 흔히 있는 일이었으나 오늘날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트랜사비아 홀랜드의 조종사 리즈 제닝 클라크(Liz Jennings Clark)는 평가했다. 그러나 그녀가 복도에 서서 기내를 빠져나오는 승객들에게 인사를 할 때 조종사 유니폼을 입고 있음에도 몇몇 승객은 스튜어디스로 확신하고 손에 쓰레기를 쥐어줘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자주 항공사는 남자 파일럿과 여자 스튜어디스의 이미지를 담은 광고를 한다. 이는 젊은 여성들에게 “만약 당신들이 비행기에서 일하고 싶다면 조종사로는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는게 영국 파일럿단체 발파(Balpa)의 평가다.
 
클라크는 파일럿이 적합한지 의심을 품는 젊은 여성들에게 태미 조 슐츠(Tammie Jo Shults)가 세운 공로를 부각시켜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슐츠는 제트 엔진이 폭발하자 비상 착륙을 시도해 성공시킨 사우스에어라인의 용감한 여조종사였다.
 
프랑스 국립 항공대학교 책임자인 소피 코팽(Sophie Coppin)은 파일럿이라는 직업이 젊은 여성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부모와 선생님들을 포함해 사회 전체의 의식적·무의식적 고정관념이 직업의 경계를 무너뜨리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저가 항공사 이지젯은 약 6%의 여성이 조종사인데 2020년까지 20%의 여성을 고용할 목표를 세우고 있고, 이를 위해 새 비행기 프로모션에 여성 조종사들을 전면 부각시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이지젯 최고경영자 요한 룬드그렌(Johan Lundgren)은 설명한다.
 
남녀평등 사회를 만들려면 이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남성은 파일럿, 여성은 스튜어디스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한 페미니즘은 실천되기 어렵다. 직업의 남녀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서양 항공사들은 모델 개발에 분주하다.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이 성공하려면 여성성을 강조하기보다 이를 허물고 여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청산해야 한다. 여성을 위한 제도개선도 중요하지만 몇 백 년 간 이어져온 여성에 대한 전통적 이미지를 깨고 새 모델을 개발할 때 남녀평등 사회는 바야흐로 실현될 수 있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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