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막는 건설업 다단계구조)벼룩 간 내먹는 재재하청…단속체계 없어 불법 도돌이표
보복 우려해 신고 주저…"공무원 관리 감독 의무화해야"
2018-11-07 06:00:00 2018-11-07 06:00:00
[뉴스토마토 최용민 기자]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박모(54세) 씨는 3명의 동료들과 팀으로 움직이는 석공업자다. 지방 중소 건설사에서 하청 일을 받아 그때그때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다. 중소 건설사는 대부분 대형 건설사 하청 일을 하는 터라 박 씨가 맡는 일감도  대부분 재하도급이다. 간혹 개인 사업자에게 일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재재하도급이라 부른다. 재하도급부터 모두 불법이기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힘들다. 안면 있는 사람을 통해 신의로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때문에 박 씨는 항상 마음 속에 공사비를 떼이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다.
 
결국 지난 4월 탈이 났다. 지방 군청에서 발주한 노인복지센터 일을 해주고, 공사비를 받지 못한 것이다. 박 씨에게 일을 맡긴 사람은 개인사업자였고, 그도 한 조경업체에서 재하청으로 일을 받았다. 즉, 박 씨는 재재하도급업자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박 씨는 발주처인 군청 담당 공무원과 조경업체에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 개인사업자에게 줄 돈을 자신에게 직접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공사비가 개인사업자에게 지불된 상태라 헛일이었다. 박 씨에게 일을 맡긴 개인사업자는 공사비를 다른 공사현장에 사용했다며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나라 건설업은 종합 건설사에 한해 1차례 하도급을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종합 건설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은 전문 건설사는 모든 공사를 직접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전문 건설사가 공사비 중 일정 부분을 떼고 재하도급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재하청을 받은 업체는 다시 또 수수료를 떼고, 개인 사업자 등에 재재하도급을 주는 다단계 구조로 이뤄진다. 실제 발주처가 지급한 공사비보다 적은 금액으로 공사가 이뤄지고 있어 부실공사 우려도 크다.
 
불법 재하도급 적발 시 재하도급 업체에 대한 처벌규정(영업정기 또는 과징금)은 마련돼 있다. 하지만 관리감독 책임권자인 원도급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미흡한 상태다. 이에 정부는 최근 불법 재하도급 문제와 관련해 원도급자의 책임을 강화할 방침이다. 불법 재하도급을 지시하고 공모한 원도급자에 대해 하도급자와 같은 수준으로 처벌하기로 했다. 불법 재하도급 근절을 위해 신고포상제도 도입한다. 다만 협력업체 배제 등 보복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불법에 대한 신고가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업계는 수수료 얼마 떼고 일을 맡기는 것이 가장 일하기 쉽기 때문에 이런 관행이 고쳐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사실 하도급 주는 것이 관리 감독도 쉽고, 일하기 편하기 때문에 건설업계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상황”이라며 “재하도급을 지시하고 공모한 원도급자도 처벌한다지만 그걸 밝혀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부차원의 관리 감독 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 모든 건설현장은 정부와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야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공사 승인 권리만 가지고 있고 허가된 공사가 올바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리 감독할 의무는 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민간 공사는 건축주나 시공사가 고용한 감리자가 감리를 맡고 있어 불법 관행을 고치기 어려운 구조로 지적된다.
 
신영철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국책감시단장은 “건축법에 ‘지역건축안전센터’ 설치 내용이 있는데 이걸 의무화시켜서 관리 감독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시공 과정에서 수시로 공무원이 가서 제대로 공사를 하고 있는지, 불법 재하도급은 없는지 허가권을 발휘했으면 만드는 과정도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왜 허가권을 가지고 있냐"며 "그렇다면 용적률 제한도 하면 안 된다. 사유재산 침해가 된다”고 질타했다.
 
불법 재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도급사의 직접 시공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 분야는 전문 건설업체에 맡기더라도 원도급사가 할 수 있는 시공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더라도 인력 등을 직접 고용하는 등을 통해 직접 시공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시각이다. 정부도 원도급사의 직접 시공을 활성화하기 위해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 50억원 미만에서 적용되는 직접시공 의무제를 100억원 미만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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