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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공룡의 블록체인 진출 파장)②페북 리브라 후폭풍…국제통화 패권 두고 각축전 치열
암호화폐 금융 안정성 우려는 여전…각국 중앙은행 CBDC 논의도 수면 위로
2019-07-29 06:00:01 2019-07-29 06:00:01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Libra)' 발행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이 리브라 백서를 발표하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 금융당국은 즉각 우려를 표명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암호화폐를 신뢰할 수 없다며 비판 행렬에 동참했다. 글로벌 정보통신(IT) 공룡 페이스북의 암호화페 프로젝트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모습이다.
 
본격적인 제도권 진입을 위한 통과의례라는 시각도 있다. 오히려 이같은 진통을 계기로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이 중요한 전환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암호화폐 논의를 촉발하고, 시장 확대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나아가 미국과 중국을 위시한 각국이 암호화폐를 포함, 디지털 화폐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나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페이스북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블록체인 리브라 백서와 테스트넷을 공개하고 전 세계적으로 통용 가능한 리브라 발행을 공식화했다. 리브라는 법정화폐와 연동돼 가격 변동성을 줄인 스테이블 코인 형태로, 내년 상반기 메인넷 출시와 함께 공식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암호화폐 지갑을 개발하는 자회사 칼리브라를 신설했고 비자와 마스터카드, 페이팔, 우버 등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는 리브라협회를 통해 독립적인 관리와 감독이 이뤄진다. 백서에 따르면 리브라는 우선 개인간 송금 수단으로 활용하고 향후 뱅킹과 대출, 신용거래 등 주요 금융서비스로 사용처를 확대한다.
 
"페이스북 어떻게 믿나"
 
업계는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통해 사실상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의 역할을 맡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도 "전 세계 17억명의 인구가 은행계좌가 없어 금융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리브라는 금융 소외계층이 간편하고 손쉽게 금융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23억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이용자 수를 고려하면 소액결제나 해외송금 수단으로 활용될 리브라 영향력은 상당할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기존 은행을 대체하는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막대한 파급력이 예상되는 만큼, 무엇보다 신뢰와 안정성이 문제다. 최근 페이스북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지난해 8700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사태로 인해 50억달러 벌금을 부과받았다. 지난 16일과 17일 미국 상·하원 의회에서 열린 리브라 청문회는 페이스북의 보안과 프라이버시 정책 비판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기도 했다. 리브라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자금세탁과 테러자금지원 방지, 이용자 보호방안과 데이터 보안 등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페이스북 리브라는 거래 데이터를 활용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모든 통화는 신뢰에 기초한다. 오직 바보만이 리브라를 믿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계 각국의 금융당국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리브라가 기존 금융 안정성을 저해하고, 금융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리브라가 기존 법정화폐를 흡수해 유동성이 커지면,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통해 실업률이나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금융위원회도 이같은 취지의 보고서를 냈다. 금융위는 보고서를 통해 금융위 공식의견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정부와 중앙은행 통제 아래 작동하고 있는 금융시스템과 은행산업은 물론, 금융소비자에게도 여러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자유로운 환전과 해외송금으로 경제위기시 리브라로 자금이 쏠리는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위기가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디지털화폐 패권 경쟁"
 
페이스북은 의회 청문회에 앞서 공식 성명을 내고 "리브라 프로젝트는 당국 규제를 적용받아 진행될 것이고, 우려사항이 충족되고 적절한 승인을 받을 때까지 리브라를 출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리브라 발행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의미보다 발행 전까지 모든 우려를 해소하겠단 의지로 보인다"며 "자금세탁과 개인정보, 금융불안 등 제기된 문제들도 암호화폐 이슈로 새로운 건 아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페이스북이 애초에 이런 난관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반문하면서 "이를 감수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한 데는 향후 더 큰 시장 가능성을 보고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리브라를 계기로 각국이 국제 통화 패권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암호화폐를 포함한 디지털 화폐 확산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도 이에 대한 대비를 서두를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한동안 주춤했던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 논의도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리브라를 언급하며 "중앙은행의 법정화폐 통제에 장기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예상보다 빨리 각국에서 CBDC를 발행해야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텔레그램이 그램(GRAM) 출시를 앞뒀고 중국이 CBDC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며 "결국 미국 정부는 디지털 화폐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자국 기업(페이스북)을 지지할 유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리브라 청문회에 참석한 데이비드 마커스 칼리브라 CEO도 리브라가 미국 국익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디지털 화폐와 결제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라며 "우리가 실패하면 전혀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다른 이들에 의해 디지털 화폐가 통제되는 상황을 목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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