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초점)악플러에게 '표현의 자유'는 사치다
최진실, 설리, 구하라...악성 댓글로 희생당한 연예인들
"연예인은 악플 감수해야 해"가 당연시되는 사회…공감능력 떨어지는 악플러
입력 : 2019-12-11 06:00:00 수정 : 2019-12-11 06:00:00
[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 표현의 자유. 대한민국헌법 제21조에 언급된 내용이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 중점이다. 민주주의를 따르는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의 자유는 보장되는 게 맞다. 하지만, 이 말이 무한한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생기고, SNS가 발전하며 우리는 언제나 불특정 다수의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연예인의 경우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네티즌들의 정보 습득력은 웬만한 기자들 못지않다. 그만큼 네티즌들의 목소리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사진/게티이미지
그래서일까. 그들이 내뱉은 '의견'은 때로는 '규칙'이 되고 '법'이 된다. "관종이다", "꼴 보기 싫다" 정도의 말은 이제 애교 수준이다. 한 사람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도 그것이 '사이다 발언' 정도로 치부되는 온라인 사회.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대한민국 악플의 역사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건 11년 전, 고 최진실 사건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 사건에는 몇몇 언론들의 악의적이고 편향된 기사가 있었고, 행실이 좋지 못한 관계자들의 행패도 있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들의 '쿵짝'에 반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 수백 개의 악플이 쏟아졌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루머들도 생겨났다.
 
구하라-설리. 구하라 인스타그램
 
그리고 1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귀중한 스타들을 떠나보냈다. 그중 고 설리와 구하라에겐 안타까운 공통점이 있었다. 생전 언제나 악플과 루머가 따라다녔다는 것. 그들이 직접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에도 악플러들은 상주했다. 얼굴에 대한 평가는 물론, 신체의 특정 부위를 따다 천박한 별명까지 만들기도 했다.
 
단순히 욕설이 적힌 게 악플은 아니다. "정말 걱정되니 그만 좀 하라", "예쁜 얼굴로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라는 말도 가스라이팅의 일종이다. '언어폭력'(원제 The Verbally Abusive Relationship)의 저자 퍼트리샤 에반스(Patricia Evans)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말투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말도 언어폭력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비난하는 행동이라는 것.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처. 사진/SBS
 
11월 1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고 설리에 대한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당시 취재진은 악플을 달았던 네티즌 몇 명을 만났는데,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돈 많이 버는 연예인이면 그 정도 악플은 감내해야 한다", "100주 전에 쓴 글을 왜 이제 와서 그러냐"며 오히려 역정을 냈다. 자신들의 행동이 악성댓글, 언어폭력이라는 것을 극구 부인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언어폭력을 인지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건 피해자의 몫이다. 가해자에겐 변해야 할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아내야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바로 가해자들의 지능에 있다. 
 
윤홍식 대표. 사진/홍익학당
 
철학자 윤홍식 대표가 한 말 중 유명한 말이 있다. "사람마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이 다 있다. 만약 그게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는 건 영성 지능이 떨어지는 거다", "사람들은 양심이 없는 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거 지능이다'라고 하면 조용해진다. 자기 머리가 좋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라는 것. 쉽게 말해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은 지능의 문제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공감 능력은 학식이다. 덧셈을 모르면 곱하기를 할 수 없는 수학처럼, 공감 능력은 역지사지, 측은지심이 없으면 가질 수 없다. 공감은 천성이지만, 그 공감을 '개인화'시킬 것인지, '사회화'시킬 것인지는 당사자의 몫에 달렸다. 그리고 21세기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공감 능력이 사회화까지 발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처. 사진/SBS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규제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악플러들은 자신들의 공감능력이 낮다거나, 해당 발언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은 지능이 낮기 때문이다.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 반려동물들에게 "네가 어질렀으니 네가 치워라"고 한들, 그들이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물론 반려동물의 공감 능력은 악성댓글을 밥 먹듯 쓰는 사람들보다 높다.)
 
반대로 언어폭력의 희생자들은 책임감이 강하고 배려심이 깊다. 고 설리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생전 그의 SNS에선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기념해 글을 올리기도 했고, 'GIRLS SUPPORTING GIRLS'(여성은 여성을 돕는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설리 인스타그램
 
또 낙태죄 폐지에 대해서도 "영광스러운 날이다. 모든 여성에게 선택권을"이라는 글을 올렸고, '노브래지어'에 대한 논란에도 "브래지어는 여성의 선택이다"라며 편견에 맞서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다수였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각종 SNS에서는 '#브라는_액세서리다'라는 해시태그가 생겼고, 설리의 의견에 공감해 연대하는 모임도 생겨났다. 설리의 행보는 '논란'이 아니라, '진보'였고 '사회적 운동'이었다.
 
항상 당당할 줄 알았던 설리. 그런 그가 세상을 등졌던 것에는 단언컨대 악성댓글의 몫이 크다. 퍼트리샤 에반스는 언어폭력을 당할 경우 보이는 증상에 관해 설명한 바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꼽자면 이렇다. 항상 경계 태세에 있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비난의 목소리가 내면에 자리 잡게 된다. 항상 불안하거나 미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다.
 
설리-구하라. 구하라 인스타그램
 
최근 연예계를 떠난 스타들은 대부분 20대의 젊은 청춘들이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은 그들은 성별도, 이름도, 나이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존재를 부정당하며 살았다. 결국 '내가 잘못됐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고,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그들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서야 사람들은 "미안하다", "그곳에서는 행복하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도 악플러들의 행보는 여전하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추접스러운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오늘도 각종 포털사이트 베스트댓글에는 모 연예인의 연기, 외모, 심지어는 행실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사람의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이 상황에서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나 한 명쯤이야", "얘는 이 말을 들어도 싸"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화 실패다. 만약 악성댓글에 대한 처벌규제가 더 강화된다면, 사회봉사 시간을 채우듯 공감 능력 강화를 위한 의무교육 시간을 줘야 하는 게 옳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악성댓글이 쓰이는 배경에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높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 필자 또한 매우 안타깝고, 반성하는 입장이다. 앞으로도 필자는 최대한 객관적인 글을 쓰면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글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언어폭력의 가해자들은 쉽사리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마 악플러 '고인물'들은 필자와 비슷한 생각은 일절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참으로 많지만, 딱 한 마디만 해줄 수 있다면 이 말을 하고 싶다. "당신, 참 지능 낮다"고. 
 
김희경 기자 gmlrud151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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