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초점)폭력을 장난이라 규정한 EBS, 미성년자 인권 없애다
EBS "최영수-채영, 서슴없는 사이라 자주 장난쳐" 해명
미성년자들의 인권은 어디로…EBS의 안일한 대처
입력 : 2019-12-11 18:22:49 수정 : 2019-12-11 18:41:33
[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 "평소에도 자주 장난을 칩니다. 서로 허물없는 사이라서 그렇습니다."
 
위 멘트는 EBS와 '보니하니' 제작진, 그리고 '하니'인 채연 측이 밝힌 입장을 추스른 것이다. 언뜻 봤을 때는 동년배끼리의 장난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저 '서로'에 포함된 사람은 만 15세 미성년자 걸그룹과 만 35세 성인 남성 개그맨이다.
 
여기서 잠깐, 표준국어사전에 등재된 '장난'의 뜻을 알아보자. '주로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하는 짓, 또는 심심풀이 삼아 하는 짓'이라 쓰여있다. 물론 장난은 성인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주체가 동등할 때 장난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예시를 들어보자. 태어난 지 일주일 남짓 된 새끼 침팬지와, 20살이 된 침팬지가 함께 있다. 새끼 침팬지가 아무리 주먹질을 해도 20살 침팬지에겐 그저 간지러울 뿐이다. 반면 20살 침팬지가 뛰다 새끼 침팬지를 발로 밟으면, 최소 골절일 것이다. 20살 차이 나면 당연히 그렇지 않겠냐고? 우습게도 채연과 최영수의 나이가 딱 20살 차이다.
 
'보니하니' 유튜브 방송 캡처. 사진/EBS
 
EBS는 분명 폭행은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공개된 영상으로만 봤을 때 최 씨가 채연의 신체에 폭행을 가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에 다시 보이는 채연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룰렛에 몸을 기대고, 한쪽 팔을 계속 만지고 있다. 정상적인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얼굴을 봤을 때 즐거워 보인다고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BS는 "두 사람 사이의 장난"이라고 주장했다. 한쪽만, 그것도 신체적으로 우월한 남성이 미성년자 여성을 폭행하는(혹은 폭행하는 듯한) 것은 장난이라고 할 수 없다. 한쪽만 재밌는 것은 장난이 아니라 '괴롭힘'이다. 
 
EBS는 처음 논란이 터졌을 때 대략 네 줄가량(길게 봐서 다섯 줄)의 입장문을 올렸다. "관련 논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더 이상의 추측과 오해는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어떤 논란이 일어났고, 그래서 네티즌들이 어떤 추측과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EBS 입장문
 
그들의 안일한 태도는 논란에 불씨를 지필 뿐이었다.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올라간 뒤에서야 입장문을 올렸다. "출연자 간에 폭력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일부 매체에서 언급한 폭력이나 접촉이 있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출연자와 현장 스태프 모두 확인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어제는 심한 장난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이는 분명한 잘못이다"며 "당분간 라이브 방송을 중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2차 입장문은 더욱 황당했다. 요약하자면 "폭력은 하지 않았지만, 장난을 한 건 맞다"가 된다. 앞서 말했듯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 여아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미성년자 시청자들이 대다수인 EBS에서 이 행위를 장난이라고 치부하는 것 자체가 씁쓸하다.
 
최영수. 사진/EBS
 
EBS와 채연 측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두 사람이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심한 장난을 친 것"이라고. 하지만 어른과 아이는 원래 허물이 있어야 한다. 거리를 둬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미성년자'의 본뜻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지나가는 초등학생한테 물어봐도 답을 들을 수 있다.
 
최 씨가 신체적 폭행을 시도했다면, 박동근은 천박한 언어폭력을 했다. 생방송이 진행 중인 와중에 "너는 별로야. 넌 입에서 구강청결제 냄새나", "너는 소독한 X이야. 독한 X"이라고 말을 했다. 필자는 해당 발언에서 왜 특정 브랜드의 구강청결제 이름이 나왔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검색했고, 후회했다. 바라는 게 있다면, 채연에게 이 더럽고 추잡스러운 TMI(Too Much Information)가 전달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 씨가 2004년생 아이에게 성과 관련된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는 것. 단편적인 영상만 보더라도 최 씨와 박 씨의 평소 행실이 어떤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까지도 EBS는 박 씨의 발언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인지, 할 말이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영화 '우리집' 아역배우 촬영수칙
 
영화 '우리집' 메가폰을 잡았던 윤가은 감독은 당시 아역배우의 촬영수칙을 만든 바 있다. 당시 수칙 2번에는 "어린이 배우들 앞에서는 전반적인 언어 사용과 행동을 신경 써달라"는 말이 나온다. 또 "자신도 모르게 쓸 수 있는 욕설과 음담패설 등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 외모나 신체를 어른의 잣대로 평가하는 단어는 신경 써달라"고 덧붙였다.
 
이 말은 방송계에서도, 가요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 법적으로도 더 큰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들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분명 질책받아야 한다. 설령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장난으로 그랬다"고 두둔하더라도 가해자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사랑해서 성관계했다"는 아동성범죄자들의 말 같지 않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EBS는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사실 EBS가 해야 할 일은 매우 간단하다. 문제가 된 성인을 프로그램에 출연시키지 않아야 한다. 프로그램을 보지도 않았던 네티즌들이 아닌,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이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한다. 
 
이쯤에서 '보니하니'의 프로그램 소개란을 다시 보게 된다. '재미있는 애니메이션과 창의력, 인성을 향상시켜주는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 쓰여있다. 글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폭력적인 장면과 인권, 인성을 하락시키는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보니하니' 시청자 게시판. 사진/EBS

 
김희경 기자 gmlrud151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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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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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기자님. 정리가 아주 잘 되어있는 기사네요. 응원합니다.

2019-12-11 18:44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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