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 안철수 국민당이 가야할 길
입력 : 2020-02-11 06:00:00 수정 : 2020-02-11 06:00:00
유난히도 이번 총선은 치열하고 예측 불허인 듯하다. 집권을 계속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을 어떻게든 승리하려고 치밀한 전략을 짜고,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들은 민주당을 어떻게든 저지하려고 통합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게다가 선거법 개정으로 창당 바람이 불어 수많은 정당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올 기세다. 
 
새로운 정당들이 출현해 기존 정당들과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다면 누가 이를 말리겠는가. 하지만 한국의 대부분 정당들은 오래가질 못하고 이합집산만을 거듭하고 있으니 기대보다는 회의적인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난 9일 안철수계는 “진영 정치를 무찌르겠다”고 오렌지색 티셔츠와 스카프를 두르고 ‘국민당’을 창당했다. 국민당은 그들의 말대로 ‘실용적 중도의 정착’을 위해 굳은 신념과 결기로 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의지가지없는 중도층 표심만을 자극해 ‘오렌지색 바람’ 한번 일으키겠다는 심산이면 유권자들은 또다시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프랑스도 우리처럼 무수한 정당들이 경쟁을 한다. 지난 2017년 대선에 후보를 낸 정당만도 10여 개다. 그러나 기성정당에 염증을 느낀 많은 프랑스 유권자들은 정당 없이 선거판에 뛰어든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표를 던졌다. 사실 마크롱 정권 탄생은 프랑스 중도정당 모뎀(MODEM)의 역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모뎀의 프랑수아 바이루(François Bayrou) 대표는 2007년 대선 1차전에서 18.57%를 얻자 중도정당 모뎀을 바로 창당했다. 2017년 대선 때 바이루는 프랑스가 헤쳐모여야 할 때가 지금이라 판단하고 표가 분산될 위험을 막기 위해 마크롱에게 연합을 제안했다. 그는 연합의 조건으로 마크롱에게 4가지를 요구했다. 진정한 정권교체, 정치인들의 도덕성에 관한 법 제정, 노동임금 향상, 그리고 하원의원의 비례대표 증가였다. 바이루는 마크롱이 이 요구들을 받아들이자 프랑스 새판짜기에 전력했다.
 
오는 3월 15일 열리는 파리시장 선거에서도 프랑스 중도 정당의 역할은 큰 변수가 될 것이다. 바이루의 보좌관이었던 에르베 모랭(Hervé Morin)은 공화당의 라시다 다티(Rachida Dati)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1개월 후 벌어질 파리시장 선거는 현재로선 누가 당선될지 점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여성 둘이 1, 2위를 다투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를 보면, 현 시장인 사회당의 안 이달고(Anne Hidalgo)가 1위를 달리고, 공화당의 라시다 다티가 그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이민자 출신으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다티가 정치적으로 다시  부활하는 모양새다. 그녀를 지원하고 나선 모랭은 중도파로 사르코지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다티 후보와 같은 당 소속도 아닌데 지원 사격에 나선 이유를 “라시다 다티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예외적인 반순응주의자”라고 설명했다. “파리를 교체해야 한다. 라시다 다티가 이를 잘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녀의 장관 경험은 파리와 같은 지역을 잘 운영하는데 유리하다. 우리나라 같은 자코뱅(급진파) 나라에서는 파리 선거 결과가 정치 상황을 바꾸는데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지금 시기는 특별하다. 프랑스인들은 정치권에 대해 상당한 실망을 하고 있다. 우리는 교체의 주역이 되고 싶다. 따라서 공화당과 연대하고 싶다. 우파와의 연합은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를 걸어 잠그려는 치명적이고 기계적인 계획에 반대하는 일종의 수단이다. 중도 정당의 일부는 세드릭 빌라니(Cédric Villani) 후보를 지지하고, 일부는 벵자맹 그리보(Benjamin Griveaux)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몇 개월 전 ‘전진하는 공화국’과 손을 잡은 UDI(중도정당)의 일부는 기회를 잡으려고 이제 라시다 다티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 생각으로는 선거에서 이기면 중도들이 파리시 의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목표로 하지 않는다. 나의 유일한 관심은 프랑스인들이 위험에 직면하지 않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설명도 했다. 
 
이처럼 건전한 정당들의 건전한 연합은 선거판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합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명분을 만들어 멋진 모양새를 갖추는 기술이야말로 우리 정치인들이 익혀야 할 스킬이 아닌가. 한국은 선거철마다 한 정당을 물리치기 위해 정치공학적으로 합당을 하거나 단일화하는 게 다반사다. 지금 보수야당의 통합도 그럴싸한 명분 하나 없이 단지 선거만 이기면 장땡이라는 일념에서 나온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당도 마찬가지다. 창당 명분으로 “국민의 이익 실현을 위해, 진영 정치를 무찌르고 제대로 된 도우미 정치를 하기 위해 뿌리 깊은 권위주의와 온몸으로 부딪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이는 허구적 수사에 그칠 확률이 크다. 프랑스 모뎀의 바이루 대표는 마크롱과 연합하기 위해 4가지 요구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모랭 역시 다티를 지원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지 않은가. 국민당, 그리고 앞으로 창당될 중도정당들은 좀 더 큰 대의명분과 실현 가능성이 있는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유권자에게 다가가길 바란다. 정치는 액션이지 결코 미사여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기 바란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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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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