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후쿠오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진 여행
경계인이 한중일 3국 바라보는 기묘한 시선
입력 : 2020-08-22 10:13:58 수정 : 2020-08-22 10:13:58
[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강렬했던 기억은 아무리 지워내려 해도 머리 속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잊은 줄 알고 있다가도 문득 수면 위로 떠오른 추억은 때론 당혹스럽게, 때론 과거에 잠기게 만든다. 장률 감독의 영화 후쿠오카는 가슴 깊이 묻어뒀지만 불쑥 존재감을 드러내는 기억을 다시금 돌이켜보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경계인으로 바라본 한중일에 대한 시선을 담아냈다.
 
제문(윤제문 분)은 대학가에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교복을 입은 단골 손님 소담(박소담 분)의 제안으로 불쑥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술집에서 제문의 대학 선배인 해효(권해효 분)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28년 전 대학 연극 동아리의 순이를 동시에 사랑했다가 순이가 떠나면서 악연이 되어 버린 사이다. 28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순이가 대학 시절 자주 찾던 정은 서점에 자리 잡은 제문과 순이의 출신지인 후쿠오카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해효는 첫사랑의 추억에 갇혀 있다.
 
후쿠오카는 해효, 제문, 소담의 이야기를 쫓다 보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기묘한 느낌마저 안긴다. 이러한 느낌은 세 사람의 후쿠오카 여행이 마치 꿈 같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선 언어의 경계를 허물어 놓는다. 마치 꿈 속에서는 언어의 경계가 사라지듯 소담은 언어를 몰라도 그 의미를 충분히 느끼게 된다.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소담은 일본어를 알아듣고 대화를 한다. 우연히 만난 중국 사람과도 서로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해효와 제문 역시 중국 사람과 소담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알아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해 한다.
 
가끔 꿈을 꾸다 보면 기억이 혼재되어 버린다. 과거에 경험했던 기억이 바탕이 되긴 하지만 바라는 바가 추억과 뒤엉켜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후쿠오카에서 제문과 해효는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순이에 대한 각자의 기억이 다르고, 과거 술을 마시면 전화를 해 잠을 못 자게 했는지 여부를 가지고 말다툼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관객들은 어느 순간 현실과 꿈의 경계에 발을 내딛게 되는 경험을 한다. 소담은 제문을 후쿠오카로 이끌 듯 관객이 현실에서 꿈의 경계선으로 다가가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담은 스스로 때론 자신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처럼 소담의 정체는 영화 내내 궁금증을 자극하는 존재다. 제문과 해효를 28년간 갈라서게 한 순이인지, 아니면 또 다른 존재인지 알 길이 없다. 확실한 건 소담이라는 인물이 툭 던지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제문과 해효가 조금씩 변화한다는 점이다. 중국 말을 알아 들어 당황하는 두 사람에게 소담은 긴장하고 살아서 그런다고 이야기를 한다. 또한 두 사람에게 연극을 하자고 제안을 한다. 소담의 던진 말은 어느 순간 두 사람의 가슴 속에서 발화해 28년간 가슴에 담아둔 말을 꺼내는 역할을 한다.
 
후쿠오카 권해효 윤제문 박소담. 사진/률필름
 
 
 
두 사람을 28년 간 추억에 빠져들 게 만든 순이는 영화에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 윤동주의 자화상사랑의 전당이 나온다. 해효의 가게에 붙여 있는 윤동주의 자화상, 10년간 말문을 닫은 해효의 가게 단골이 말문을 열고 자신이 10년간 말을 하지 않는 이유로 윤동주의 사랑의 전당을 읊는다. 장률 감독의 작품에는 윤동주 시인이 자주 언급된다. 이번 작품은 윤동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난 윤동주 시인은 평양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윤동주라는 인물은 중국, 한국, 일본을 모두 아우르는 인물이다. 더구나 장률 감독은 중국 연변에서 나고 자란 재중 동포다. 그렇기에 장률 감독은 매 작품마다 공간, 시간, 성별, 연령,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중국, 한국, 일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경계인으로 살아온 장률 감독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윤동주를 통해 한중일 3국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영화 속에 담아냈다. 소담이 해효와 제문을 보고 똑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단순히 두 사람이 비슷하다고 들리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등장하는 중국 여자, 이리에 서점의 일본 여자까지 두 사람은 국적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중국 여자는 꿈에서 본 장소에서 일본 작가의 소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또 이리에 서점의 일본 여자는 중국 의상을 연상케 하는 옷을 입고 있다.
 
'후쿠오카' 권해효 윤제문 박소담. 사진/률필름
 
 
 
소담은 후쿠오카 어디를 걸어 다녀도 보이는 철탑을 보고는 자신을 따라 다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소담의 말에 해효는 텐징역 가운데 있다면서 따라오는 게 아니라 다 보인다고 대꾸한다. 강렬한 기억은 후쿠오카속 철탑과 같다. 지우려고 해도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마음 가운데 우뚝 자리잡아 어디서든 보일 뿐이다. 영화는 강렬한 기억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한중일 3국이 서로를 헐뜯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3국의 오래된 반목이 자리 잡아 어느 순간 어디서든 표출된다.
 
소담은 두 사람에게 철탑에 올라 해효의 가게를 보면 어떻게 보일지 묻는다. 이에 세 사람은 철탑에 올라 후쿠오카 거리 속 해효의 가게를 찾는다. 그리고 소담은 갑자기 정은서점의 전화번호를 묻고 전화를 건다. 그리고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장률 감독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강렬했던 추억이 주는 감정,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헐뜯는 행위가 결국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보게 한다. ‘후쿠오카는 긴 꿈을 꾸고 불현듯 잠에서 깬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그리고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자신의 꿈을 곱씹어 보는 것처럼 영화를 되새겨 보게 한다. 827일 개봉.

후쿠오카 권해효 윤제문 박소담. 사진/률필름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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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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