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4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미국 상무부가 최근 자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대신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능력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안을 발표했습니다. 업계에선 중국에 수 십 조원을 투입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우리 기업들이 우선 최악은 평가했습니다.
최악을 피했다고 평가한 것은 앞서 미 상무부가 지난 6일(현지시간) 공개한 보조금 지원 세부 계획에는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이 10년간 중국 등 우려 기업 투자를 제한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보조금 지원 세부 계획이 공개되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들은 중국에 생산시설 철수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가드레일 조항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이 가능한 걸로 발표되면서 한시름을 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가드레일 조항은 향후 10년 동안 중국에서 최첨단 반도체는 생산능력 5%, 범용 반도체는 10% 생산능력을 제한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생산능력을 제한하되 생산은 허용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10년 내 메모리 반도체도 시스템 반도체와 같이 극자외선(EUV) 활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제한하면 삼성 SK 경쟁력이 위축될 수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는 10년 내 지금보다 더 빠른 연산처리를 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메모리반도체 역시 시스템반도체와 같이 EUV 활용이 필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 상무부는 지난 27일(현지시간)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들에게 기업들이 예상하는 현금 흐름 등 수익성 지표를 산출 방식에 근거해 엑셀파일로 제출하라고도 했습니다.
제출하는 엑셀 파일에는 반도체 공장의 웨이퍼(반도체 원재료) 종류별 생산 능력,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완성품 중 합격품 비율), 연도별 생산량, 판매 가격 증감 등이 포함하도록 합니다. 여기에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소재, 소모품, 화학품과 공장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공공요금, 연구개발 비용도 입력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사실상 반도체 기업들의 영업 기밀을 내놓으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수율을 알게 되면 그 회사의 반도체 원가는 물론 판매 가격까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미국 반도체 기업들도 이러한 무리한 요구 조건을 마냥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때문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미 반도체 기업들과 의견을 모아 상무부의 요구 조건을 최대한 덜어내고 낮춰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날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미국 반도체 보조금) 신청서가 너무 힘들고 엑셀도 요구하고"라며 "(보조금 신청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