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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범죄 어제와 오늘) ③판결로 본 '배상액' 산정은?
2000년대 들어 '회사대표 개입' 다수 적발..투자자, 실질적 배상길 열려
입력 : 2013-06-07 오후 1:33:29
(사진=뉴스토마토DB)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우리나라에 증권거래소가 개설된지 벌써 50년이 지났다. 그동안 금융상품이 증가하고 IT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증권범죄 수법도 다양해진 만큼 피해주주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원의 법리도 발전해왔다.
 
우리 법체계는 '분식회계·내부자거래·시세조종' 등 증권범죄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함께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소액투자자로서는 고액의 소송비용이 부담스러운데다, 직접 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운 전문분야라서 민사소송으로 책임을 묻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검찰과 금융당국은 '소송 지원센터'를 거래소에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시세조종이나 분식회계 외에 부실공시 등 위법행위 유형을 추가해 소송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법원은 증권범죄에 대한 민사소송에서 피해범위와 손해액을 어느 정도 인정해 왔을까?
 
◇'회사대표' 개입 적발..법원, 책임비율 40% 인정
  
90년대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에 의해 적발된 '주가조작'세력은 대부분 개인 수준이었다. 
 
증권소송을 많이 다뤄온 변호사들은 "회사가 관련된 증권범죄가 많았을법 하지만, 적발된 적은 거의 없었다"며 "주가조작이라는 게 밖에서 보기에는 불명확하기 때문에 기업을 적발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증권범죄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그동안 대부분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승소하더라도 사실상 손해를 보상 받을 길이 없었다.
 
증권소송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전영준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개인들간에 주식거래를 하면서 조작을 한 경우 피해자는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데, 범죄를 저지르면서 자기 명의로 재산을 남겨둘 리가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 아무리 원고에게 배상하라 판결을 해도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토마토DB)
 
그런데 최근 들어 회사의 대표나 경영진이 주가조작에 실제 관여한 사례가 수차례 적발되면서, 소송을 내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실제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 변호사는 "투자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면, 기업이 망해도 이 기업의 재무재표를 외부감사했던 회계법인에게 소송을 걸 수 있다. 그만큼 배상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대표가 주가조작에 개입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대우전자 분식회계' ·정국교 전 민주당 의원의 'H&T 주가 조작'·이익치 전 회장의 '현대증권 주가조작' 사건 등이 있다.
 
법원은 투자자들이 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해를 입힌 회사 측의 책임 비율을 40%이상 인정했으며,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 법원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위험을 감수한 투기적 측면이 있는지, 손해발생과 손해 확대의 한 원인이 됐는지 여부' 등을 따져 과실비율 만큼 손해배상 규모를 제한하고 있다.
 
즉, 투자자의 부주의를 이용해 고의로 피해를 입힌 회사 측의 책임도 크지만, 신중하지 못하게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에게도 책임을 인정한다는 게 우리 법원의 입장이다.
 
(사진=뉴스토마토DB)
◇'대우전자 분식회계' 소송서 손해액 기준 명확해져
 
무려 8년간이나 법정공방을 걸친 '대우전자 분식회계' 민사소송은,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받을 손해액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첫 사례로 꼽힌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이 소송에서 법원은 '분식회계 발표 이후에 형성된 정상주가의 전후를 구별해 손해액을 개별적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초 옛 대우전자 소액주주 350여명이 안진회계법인과 대우전자 임직원들을 상대로 낸 소송이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분식회계 발표 이전에, 대우전자에서 발표한 사업보고서 등 공시를 진실한 것으로 믿고 주식을 취득했기 때문에 분식회계 발표 이후 주가가 하락한 손해에 대해 회사 측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회사 측의 구체적 책임에 대해서는 "원고들의 주식 취득 당시 대우전자의 재무상태 문제점이 어느 정도 알려졌는데도 무모하게 주식을 취득해 손해가 확대됐다"며 30%로 제한했다. 또 피해보상의 범위에 대해서는 '원고들이 주식을 취득한 금액에서 처분한 가격을 뺀 금액'이라고 인정했다.
 
반면 항소심은 "분식회계는 십수년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원고들이 취득한 주식금액도 분식회계로 인한 비정상가가격이라서 분식회계와 주가하락 간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주식을 매매할 당시 대우전자의 주가변동이 분식회계의 영향때문이었다며 대우전자와 회계법인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다만 손해액에 대해서는 "'가격 반등 직전의 최저가격과 분식회계 영향을 완전히 제거하고 난 뒤의 '적정주가'간의 차액을 개별적으로 인정해 손해액을 산정하라"고 판결했다.
 
즉, 피해자가 주식을 취득하고 나서 분식회계 발표 이후 정상주가가 형성되기 이전에 주식을 팔았을 경우 손해액은 '주식취득 금액에서 처분가격을 뺀 금액'이지만, 변론종결일까지 주식을 보유하고 있거나 정상주가가 형성된 이후 주식을 팔았다면 손해액은 '취득당시 가격에서 정상주가를 뺀 금액'이 손해액에 해당한다는게 대법원의 판결 취지다.
 
이후 사건을 이 다시 심리한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손해액 산정 취지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회사측 책임제한을 1심보다 2배 높은 60%로 늘려 인정했다. 이로써 안진회계법인과 회사 측은 대우전자 소액 주주들에게 100억여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게 됐다.
 
◇투자자들이 증권사 직원들과 상담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DB)
 
◇'ELS 소송' 엇갈린 1·2심 판결..대법원 판단 남아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주가를 고의로 떨어뜨려 손실을 봤다"며 증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은 1·2심에서 엇갈린 판결이 나온 가운데 대법원의 판단을 남겨두고 있다
 
ELS는 특정 종목 주가지수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미리 약속한 수익률을 지급하도록 설계된 파생상품이다. 반대의 경우 투자자는 원금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지난 2010년 ELS 투자자들이 대우증권과 도이치뱅크를 상대로 낸 소송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증권사가 주식을 일부러 대량 매도해 중도상환 기회를 무산시켰고 보통주를 저가로 대량 매도한 행위는 시세조종행위에 해당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즉, 금융기관이 ELS를 발행함으로써 '위험관리' 또는 투자자들에게 지급할 상환금을 위해 오로지 델타헤지(위험관리) 거래를 해야 할 의무는 없고, 델타헤지는 금융기관이 위험관리 등을 위해 자체 개발한 금융기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반면 BNP파리바와 신영증권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만기일에 주식을 대거 매도한 행위는 투자자들의 수익 성취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헤지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증권사의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법원이 매도 주문은 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한 정당한 헤지 거래였다는 증권사측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배상책임을 받았던 증권사들까지 모두 승소했다.
 
만약 대법원이 투자자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 ELS '시세조종' 관련 분쟁은 전환점을 맞는 셈이다. 과거 시세조종 의혹이 제기된 ELS에 대해서까지 소송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한편, 검찰은 수익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ELS 중간만기 평가일에 고의로 주식을 내다팔면서 특정 종목 주가를 고의로 떨어뜨린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이들 증권사를 2011년 6월 기소했지만, 아직까지 형사재판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대법원(사진=뉴스토마토DB)
 
◇'투자자-회사' 책임제한 비율 시기별로 책정하기도
 
에이치앤티(H&T)사의 대주주인 정국교 전 민주당 국회의원이 개입된 주가조작 사건의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투자자와 회사간 책임제한 비율을 시기별로 다르게 책정했다.
 
지난해 5월 서울고법은 투자자 749명이 정 전 의원과 주식회사 에이치앤티(H&T), 당시 이사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정 전 의원이 고의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중요사실을 부실 기재하는 등 증권거래법을 위반했고, 부정거래 행위와 투자자들의 손해간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이때 재판부는 주식의 위험성을 알리는 제반사정이 외부에 공개됐는데도 투자가가 거래를 계속해 손해를 입었는지 여부에 따라 시기별로 책임을 제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주식거래는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투자자는 신중하게 거래할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재판부는 ▲'H&T 주식이 경고 종목으로 지정되고 나서 매입했으면 30% ▲정 전 의원의 주식 대량 매각이 공시된 뒤 샀다면 50% ▲H&T의 사업관련 양해각서 취소사실이 공시된 후 매입한 경우는 80%의 책임을 투자자 본인이 져야 한다'며 주식 매입시기에 따라 각각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법원은 또 정 전 의원과 함께 H&T 회사법인이 배상액의 약 50%를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해 회사측에도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정 전 의원과 H&T는 투자자들에게 200여억원이 넘는 고액을 배상하게 됐다. 
 
코스닥 상장사 H&T의 대표이사였던 정 전 의원은 2007년 4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양전지 관련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공시해 주가가 치솟자 회사 지분을 처분, 약 40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2010년 4월 대법원은 정 전 의원의 주가조작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6월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86억8천만원을 확정했다.
 
◇'횡령+부실공시' 경영진 상대 손해배상 소송 가능
 
주가조작 피해 주주들이 회삿돈을 횡령한 경영진을 직접 상대로 소송을 낼 수는 없을 까? 만약 그 경영진이 횡령에 더해 부실공시와 주가조작까지 일삼았다면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가능하다는 게 법원의 태도다. 옵셔널캐피털의 실질적 경영자인 김경준씨 사건이 그런 예이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횡령한 경영진이 고의적으로 부실공시를 한 후에 주식을 취득한 매수인이 주가하락으로 손해를 봤다면 소송이 가능하지만, 매수인이 주식을 취득한 이후 경영진의 횡령과 부실공사로 주가가 하락됐다면 불가능하다'고 봤다.
 
앞의 가정은 '투자자들이 경영진의 부실공시로 인해 정상주가보다 높게 형성된 주식을 매수했다가 직접 손해를 입은 경우'지만, 뒤의 경우는 '주가하락분의 손해는 결국 경영진의 횡령으로 회사의 재무구조가 악화돼 생긴 간접적인 손해에 불과하다는 게 대법원의 견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김씨의 횡령과 주가조작, 부실공시 등의 행위가 코스닥 등록 취소 전 옵셔널캐피털의 주가하락으로 주주들이 피해를 본 것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어 "김씨가 어떤 내용으로 부실공시 또는 주가조작을 했는지, 김씨의 어떤 행위로 주주들이 진상을 알지 못한채 주식을 샀는지와 함께 그 주식이 모두 몇 주이며 정상가보다 얼마나 비싸게 샀는지 등을 각각 심리하라"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앞서 투자자들은 김씨가 320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알려져 이 회사의 코스닥 등록이 취소되면서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김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횡령과 주가하락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고 총 1억8천여만원 배상을 명했다.
 
앞선 항소심도 인과관계를 인정했으나 배상액은 1억4000여만원으로 다소 감액됐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고법에 계류 중으로 오는 26일 세 번째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DB)
 
김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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