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사진제공=OAL)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대화를 나누던 중 배우 박철민은 수도 없이 목이 메었다. 언제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잠깐 말을 잇지 못하며 멈추는 것도 수차례였다. 그는 가까스로 말을 이어갔다.
"이 영화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면 그렇게 울컥해요. 이 영화가 참 이상해."
지난 7일 서울 서교동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제작보고회가 끝난 식사자리에서 박철민이 한 말이다.
이 영화는 강원도 속초에서 택시운전 밖에 몰랐던 소박한 아버지가 인생을 건 재판에 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지난 2007년 3월 삼성 반도체에서 일을 하다 2년 만에 백혈병을 얻고 끝내 사망한 故 황유미씨와 가족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지난 2011년 6월 1심 재판에서 승소했고, 삼성의 항소로 2심이 준비 중이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처절한 싸움을 담고 있다.
국내 굴지의 기업인 삼성을 빗댄 작품이라 투자가 쉽지 않았다. "영화가 만들어 질수야 있겠냐"는 말이 영화계에서 오고 갔다. 김태윤 감독이 오죽했으면 "영화가 개봉이 안 되면 DVD로 구울 생각이었다"고 말했을까.
아직 개봉과 흥행까지 멀고 먼 길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결과만으로도 김태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출연진이 일궈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의미있는 점은 펀딩과 100여 명의 개미투자자들로부터 제작비를 모았다는 데 있다. 7564명이 참여한 펀딩을 통해 3억원을 모금했고, 100여 명의 투자자들로부터 10억원을 모았다. 당초 예상했던 8억원에서 5억원 정도가 늘어난 13억원이 총 제작비다.
이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영화 초반 크레딧에는 투자자들의 이름이 전면에 배치된다. 금액과 상관없이 투자한 순서대로 이름이 올라간다. 배우와 감독이 제일 먼저 올라가는 현 문화를 비춰봤을 때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투자자들에게 고마움이 크다는 제작진의 심정이 비춰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연 역시 진정성이 깊다. 올해 4월 세계여행을 준비했던 한 청년은 3000만원을 투자비로 선뜻 내놓았고, 이민을 앞둔 37살의 가장은 한국을 떠나기 전 한국사회에 대한 마지막 선물이라는 의미로 투자금을 내놨다.
시사회 참석후 1000만원을 투자한 30대 샐러리맨, "결혼자금으로 모았는데 언제 갈지 몰라 일단 투자한다"는 30대 대기업 대리도 있었다. 반도체 설계 연구원은 반도체를 설계하는데 늘 마음에 걸렸다며 무기명으로 5000만원을 투자했다.
최영환 촬영감독의 사연도 고개를 숙이게 한다. '전우치', '도둑들', '베를린' 등 필모그래피가 화려한 최영환 감독은 '또 하나의 약속'에 참여했다. 영화 참여 전 최 감독은 올 가을 개봉예정인 블록버스터 영화에 약 2억원의 촬영료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 '또 하나의 약속'에 참여하기 위해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을 미루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자 블록버스터 영화를 포기했다.
박철민은 "최 감독은 3일 동안 고민하고 이 영화를 선택했다. 우리 영화 영상미가 좋은데, 최 감독 덕분이다. 또 영화 회차를 정말 많이 줄였다"며 "최 감독이 '나는 이 영화가 잘 될 거 같아서 참여한거다'라고 했다. 그 말이 힘을 나게 한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이 영화는 하늘이 도운 영화"라고 입을 모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지난해 3월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영화는 봄부터 겨울 전체를 배경으로 하지만 촬영은 지난해 봄에만 찍었어야만 했다. 눈이 오는 장면이 필요했는데, 3월 말 눈을 기다리기는 쉽지 않았다. 제작진은 눈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3월 30일 눈소식이 들렸고, 강원도에 엄청난 눈이 쏟아졌다. 박철민은 "덕분에 그림이 아주 예쁘게 나왔다"면서 "하늘이 도와준 영화"라고 말했다.
사연을 듣던 기자 한 명은 "영화계를 보면서 희망을 얻는다"고 칭찬했다. 그의 말처럼 어수선한 이 때 이 영화가 한 줄기 희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