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포스터 (사진제공=KBS)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방송 초반부터 정통사극 신드롬을 일으킨 KBS1 대하사극 <정도전>이 지난 29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조선건국의 중심에 섰던 혁명가이자 사상사였던 정도전을 둘러싼 이야기는 이미 수 없이 많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소재였다. 하지만 <정도전>은 다양한 부분에서 기존 사극과 차이점을 보이며 진화한 사극이라는 평가와 함께 인기드라마로 올라섰다.
최근들어 노력에 비해서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정통사극은 <정도전>을 통해 여전히 사랑받는 장르라는 가치를 입증했다. 뿐 만 아니라 어른들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10~30대에게도 사랑을 받았고, 각종 게시판을 통해 다양한 패러디물이 만들어지는 등 트렌디 드라마에 못지 않은 열렬한 반응이 있었다.
이러한 신드롬을 만든 <정도전>의 힘을 짚어봤다.
◇'연기의 신'들이 보여준 명품연기
<정도전>에 출연한 배우들은 주조연 가리지 않고 엄청난 연기를 펼쳤다. 정도전 역의 조재현, 이성계 역의 유동근, 이방원 역의 안재모, 이인임 역의 박영규는 물론 정몽주 역의 임호, 하륜 역의 이광기 등 마치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 전쟁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눈빛은 물론 미세한 살 떨림까지 놓칠 것이 하나 없는 연기였기에, <정도전>에는 유독 타이트한 클로즈업이 사용됐다. 배우들의 얼굴로 브라운관을 메운 방식은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을 줬다.
타이틀 롤을 맡은 조재현은 잔혹하다할 만큼 냉정한 면도 있지만 대업의 큰 꿈을 품고 우직하게 한 길을 걷는 강직한 남성의 정도전을 연기했다. 눈에 핏줄을 세운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그의 에너지는 많은 찬사를 불러 일으켰다.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 역으로 사극 역사상 최고의 연기를 펼친 유동근은 <정도전>에서 이성계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하면서 옆집 아저씨와 같은 친근한 이성계를 그린 유동근은 세심한 감정 표현을 아끼지 않으며 정복자라기보다는 백성을 먼저 걱정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시켰다.
극초반 <정도전>을 띄우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은 이인임 역의 박영규다. 코믹연기의 대가였던 박영규는 정치9단, 인생99단의 고려 권력의 실세 이인임을 맡아 야비하고 표독한 정치인의 모습을 완벽히 구현했다. 현실을 아우르는 그의 대사 하나 하나는 모두 명대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등장부터 죽임을 당할 때까지 이인임의 존재감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방원 역을 맡은 안재모는 자신의 야망을 숨기지 않는 잔혹한 성격을 절제있게 표현했다. 누군가를 죽일 때는 잔인하고 섬뜩했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아들로서는 애절함을 드러내 공감을 샀다.
이 뿐 아니라 최영의 지조와 기개를 강렬한 카리스마로 표현한 서인석, 온화한 성품이지만 정도전과는 같은 길을 걷지 못했던 정몽주 역의 임호, 정도전의 부인 최씨 역의 이아현, 이방원의 부인이자 조력자로 연기력을 펼친 민씨 역의 고나은, 정도전과 우정을 나눈 남은 역의 임대호, 이방원의 책사 하륜 역의 이광기 등 출연자 대부분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이상을 보여줬고, 작품은 풍성해졌다.
<정도전>의 한 관계자는 "연기를 잘하는 연기자들이 현장에서 대본만 봤다. 마치 전쟁터를 나가기 전의 비장한 모습도 엿보였다. 그만큼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실을 아우른 이야기
<정도전>은 15%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했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 이상으로 뜨거웠다. 각종 게시판에서는 <정도전>을 주제로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정도전>의 인기에는 촌철살인 대사와 현실을 아우르는 이야기를 쓴 정현민 작가의 공이 상당했다는 게 공통적인 평이다. 10여년간 국회 보좌관 경력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끈 그는 현실정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대사로 정도전, 이성계, 이인임, 정몽주 등의 입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가치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공민왕 말기, 쇠락하고 있는 고려의 말단 관직 정도전이 실세 이인임과 대립하는 것부터 정도전과 이성계의 역사적인 첫 만남, 집요하고 논리적인 정도전의 설득 끝에 이뤄진 위화도 회군, 그 과정에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굽히지 않은 정몽주, 정적을 제거해 나가면서 끝내 성공한 조선 건국, 이후 요동정벌을 외치다 이방원으로부터 죽음을 맞이한 정도전과 이성계와 이방원의 대립까지 <정도전>은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현실의 문제점을 당시 조선의 문제와 맞물리게 하면서 과거와 현재 시대상을 모두 반영했다. 드라마는 허구라고 하지만 <정도전>은 실제 역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촘촘한 고증이 작품에 힘을 실으면서, 교과서 같은 드라마로 불렸다.
아울러 '하여가'와 '단심가' 서찰 신이나 정몽주의 선지교 최후신 등 대중에게 익숙한 사건을 <정도전>만의 방식으로 풀어내 재미와 의미를 부여한 부분 역시 주목해야되는 대목이다.
한동안 퓨전사극이 큰 사랑을 받아오면서 정통사극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존 사극과는 차이를 보이면서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현실을 아우르는 이야기, 배우들의 호연이 가득 담긴 <정도전>이였기에 진화한 사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