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140억 이상의 예산이 들어간 블록버스터다. 영화 <댄싱퀸>의 이석훈 감독과 김남길, 손예진을 비롯해 유해진과 이경영, 김태우, 신정근, 조달환 등 호화캐스팅으로 무장했다.
거대한 자금과 함께 영화계 빅네임들이 투입된만큼 강한 메시지 혹은 큰 스토리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영화는 철저히 진지함을 뺀다. 12세 관람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욕설 한 마디 없고,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지만 피가 낭자하는 장면은 없다. 온 가족이 보기에 거부감을 일으킬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그저 웃으라'는 의도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용감한 도전이다. 이런 류의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조선 건국 전, 고래의 습격으로 명나라에서 받아온 국새가 사라지면서 이를 찾기 위한 해적과 산적, 관군의 치열한 싸움을 그린다. 실제 조선 건국당시 국새가 없었던 10년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다. 실제 역사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영화의 분위기에 맞게 희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해적> 스틸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반대한 고려군 장사정(김남길 분)은 나라를 배신한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에게 붙은 절친 모흥갑(김태우 분)과 싸운 뒤 산속으로 들어고 산적의 두목이 된다.
두령이라고 하기에는 어수룩하고 수가 빠르지 않아 늘 허탕을 치던 그는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국새를 고래가 삼켰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사정은 큰 몫을 챙길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 동료들을 이끌고 바다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화약을 구하려던 사정은 같은 목적으로 무기를 구매하려던 해적의 잔주 여월(손예진 분)을 만난다. 좋은 무기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던 둘은 관군에 의해 체포될 위기에 놓이고 가까스로 위기에 벗어난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같은 시각, 국새를 잃어버린 조선의 대신 정도전(안내상 분)과 한상질(오달수 분)은 모흥갑에게 국새를 찾아오라고 명한다. 사정에 대한 복수심에 가득찬 흥갑은 여월의 상관이었던 잔혹한 해적 소마(이경영 분)와 손을 잡고 바다에 나선다.
우연한 계기로 손을 잡게된 산적과 해적은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흥갑과 소마의 관군들과 망망대해에서 맞붙는다.
◇<해적> 스틸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앞서 이석훈 감독이 언급한대로 <해적>은 할리우드 영화 <캐리비안 해적>을 표방했다. 무거움 속에 상황으로 만들어내는 유머보다는 캐릭터를 앞세운 웃음을 전면에 내세운다. 또 큰 돈이 들어간만큼 CG에 공을 들였고, 그러다보니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마치 놀이동산의 후룸라이드를 타는 듯한 여월의 액션은 속도감이 느껴지고 흥미가 생긴다. 선상에서 벌어지는 전투장면 역시 신선하다. 청순가련형의 대표인 손예진이 밧줄을 타고 칼부림을 하며 남자들을 발길질 하는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무거운 캐릭터가 익숙한 김남길의 변신도 흥미롭다. <선덕여왕>이나 <나쁜 남자>에서 간혹 보였던 나사가 빠진 김남길의 모습이 영화 전반을 이끄는데 어색함이 없다. 두 얼굴을 가진 김남길이다.
◇유해진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전반적으로 많은 캐릭터들이 웃음을 전달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안고가는 인물은 철봉 역의 유해진이다. 궁시렁 대는 말투하며 속물적인 행동, 산적과 해적을 오고가지만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등 곳곳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또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오달수의 모습 역시 웃음을 전달한다.
이밖에도 조선판 바나나보트와 고래에 대한 산적들의 무지함, 손이 묶인 사정과 여월의 소변법 등 다소 긴 상영시간 동안 웃을 장면이 지뢰밭처럼 깔려있다. '공기가 차갑다'는 언론시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웃음이 쏟아진 적도 드물 정도로 영화는 재밌다. 현실감을 불어넣는 이경영, 박철민, 조달환, 조희봉, 김해원 등도 탄탄한 연기력에 맞춰 유머를 선사한다.
또 영화의 주요 포인트가 되는 귀신고래 역시 상당히 잘만든 편이다. 워낙 CG가 많은 탓이라 조악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훌륭한 편이다.
독특한 판타지로 출발해서일까 개연성은 상당히 포기한 느낌이다. 에피소드 형식의 웃음이 이어지지만 이 유머코드를 한데 묶는 스토리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망망대해에서 너무도 쉽게 여월을 찾아내는 사정의 대목은 지나치게 우연적이다. 하이라이트에서 시원하게 끝을 내주는, 기억에 남는 한 방도 없다. 신나게 웃었는데, 내용이 약하다보니 다소 허무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올 여름 극장가는 블록버스터 대전이라 불린다. <군도:민란의 시대>, <명량>, <해무> 등과 함께 출격하는 <해적>이다. 이 중에서 가장 가볍고 10대부터 50대의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영화는 <해적>이 가장 적합하다. 아무생각 안하고 그냥 웃다가 오면 된다.
다만 영화를 통해 무거운 메시지를 원하거나 강렬한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피하는 것도 좋겠다. 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8월 6일 개봉. 상영시간 1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