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영화감독인 켄 로치의 작품 중 '빵과 장미(Bread and Roses)'가 있다. 2000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미국 LA에서 일어난 환경미화원 노조 결성에 대한 실화를 담고 있다. 미국 청소년 문학의 대표작가인 캐서린 패터슨이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에서 실제 발생한 파업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의 제목도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Too)'다.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인 1만5000명의 여성노동자들이 근무시간 단축과 임금인상 그리고 투표권을 요구하며 외친 구호는 '빵과 장미'였다.
'빵
'은 굶주리지 않을 최소한의 생존권이며
, '장미
'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존엄을 의미한다
. 그래서
'빵과 장미
'는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슬로건이지만 노동운동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빵과 장미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
현대가의 재벌3세인 현대BNG스틸의 정일선 사장과 미스터피자로 유명한 MPK그룹의 정우현 회장의 심한 갑질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일선 사장은 운전기사에 대한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이, 정우현 회장은 경비원 폭행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곤혹을 치루고 있다. 특히 A4 용지로 100장이 넘는 이른바 '갑질 매뉴얼'이 전직 수행기사들의 증언을 통해 폭로되면서 정 사장에 대한 비난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 매뉴얼을 위반하면 심한 폭언과 폭행 그리고 인격모독은 물론 경위서 제출과 감봉까지 요구했다는 증언에는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역시 수행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운전기사에게 지키게 하고 폭행과 폭언을 일삼은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과는 난형난제(難兄難弟)다. 운전기사의 낭심을 걷어찼다는 몽고식품 김만식 전 회장도 이 대열에서 빼놓으면 서운할 정도의 대표주자다. 진실공방 중이지만 무학소주의 최재호 회장도 운전기사에 대한 폭언과 사적심부름 등으로 갑질 구설수에 올랐다.
기업의 CEO가 폭력과 폭언을 행사한 사례는 많다. 시간 순서대로 더듬어 보면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피죤 이윤재 회장, 프라임 베이커리 강수태 회장,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 M&M 최철원 대표, 한화 김승연 회장 등이 이 리스트에 올라온다. SK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M&M 최철원 대표의 '맷값 폭행'은 영화 '베테랑'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기업 CEO의 폭언과 폭행의 대상은 대부분 해당 기업의 종업원이다. 특히 자신의 수족 역할을 하는 운전기사에 유독 많다. 왜 그런가. 종업원을 사적 소유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착각은 기업을 사적 소유물로 인식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자신은 회사의 주인으로서 종업원들에게 '빵'을 주고 있기 때문에 종업원들의 '장미'까지도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하청업체-상생의 용어로 표현하면 협력업체-직원들도 이러한 착각의 범주에 이미 들어와 있다. 고용승계 문제로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탱크로리 기사를 집무실로 불러 야구 방망이와 주먹으로 수십회 폭행한 후, 맷값으로 2000만원을 던져준 M&M 최철원 대표의 '맷값 폭행'은 그렇게 설명이 가능하다. 착각의 동심원은 더욱 확장된다. 그들은 돈 없고 백 없고 그래서 힘 없는 사회의 다수 구성원들도 발 아래에 놓고야 만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나가기도 전에 건물 문을 닫았다는 이유로 자기 회사의 직원도 아닌 건물 경비원의 뺨을 때린 MPK 그룹의 정우현 회장과, 주차시비로 호텔 지배인을 지갑으로 때린 프라임 베이커리 강수태 회장과, 출발시간을 어겨 비행기 탑승이 불가하다는 직원을 신문지로 둘둘 말아 때린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의 행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돈이 권력인 시대에 사는 그들은 특별하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그들을 알아서 모시고 특별대우를 해야 한다. 이 특별대우를 받지 못하면 기분이 나쁘다. '감히 날'이라는 심리가 노골적으로 발동하면서 분노를 참지 못한다. 일을 저지르고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사과의 주체는 본인이 아닌 늘 직원이 된다. 사과문이 변명문이 되고 영혼이 없는 일곱 줄로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CEO가 경영하는 기업의 지배구조는 제왕적이고 봉건적이며, 기업문화는 권위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근대적이다. 지배구조 리스크의 하나인 오너 리스크(owner risk)는 이런 기업에 지뢰처럼 상존해 있으며, 때문에 늘 아슬아슬하다. CEO들의 폭력의 역사는 이를 증명해 왔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한다. 이 사람은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기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런 기업의 직원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한다. 소비자는 불량 제품과 서비스를 받을 가능성이 많아진다. 투자자 또한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사회책임투자(SRI)는 이를 해결할 대안들이다. CSR과 SRI는 기업이 종업원들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빵'만이 아니라 '장미'를 보장하려는 경영을 펼칠 때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철학에 근거해 있다.
CEO들의 폭력은 가장 야만적 갑질이다. "사람을 종이컵보다 더 쉽게 버린다고 느꼈다"며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만을 바랐을 뿐이다"고 증언한,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 전직 기사들의 자괴감이 마음에 스며든다. 이번 4.13 총선에 CSR과 SRI 법제화와 제도화에 관심을 가진 의원들이 당선되어 '빵과 장미'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종오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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