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소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우리집 마당을 덮쳤다. 봄 날씨에 걸맞지 않은 강풍이 불어대던 탓에 뿌리가 얕게 심어진 나무가 넘어간 것이다. 마당 한복판을 가로질러 누워있는 소나무를 보며 통행의 어려움보다 혹여나 나가 놀던 우리 집 고양이가 깔리지는 않았는지 걱정스러웠다. 불안한 마음에 쓰러진 나무 밑을 한참 들여 보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선물해주신 벚나무 가지가 꺾인 것을 발견했다. 소나무가 쓰러지며 벚나무 가지도 함께 꺾인 게다. 경비실에 물어보니 우리 집 마당에 있던 나무만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빌라 놀이터에 있던 것까지 총 네 그루의 나무가 쓰러졌다. 쓰러진 나무는 금세 치워졌지만 놀란 가슴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운 좋게 비껴간 참사는 끔찍한
‘만약에
’를 떠올리게 했다
. ‘만약에 고양이가 나무 밑에 깔려있었다면
? 외할머니가 선물한 벚나무가 통째로 쓰러졌다면
?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다쳤다면
?’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 진짜 그렇게 됐다면 이 사건은 우리 가족과 빌라 주민에게 일어난
‘참사
’가 되었을 테다
. 만일을 떠올리다 보니 빌라에 나무를 심은 조경업체와 심기로 결정했을 사람이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 그렇게 큰 나무를 땅의 상태도 가늠하지 않고 대충 심다니
. 보기에만 좋으면 다인가
. 따지고 보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다
.
대부분의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었음에도 일어난다. 발생하지 않을 수 있던 참사는 수익률 때문에, 이정도면 대충 안전해 보이기 때문에,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기에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 32명,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502명, 2014년 세월호 사건 304명. 참사는 출근하고 쇼핑하고 수학여행을 떠나던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것뿐인가. 최근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2011년 옥시 사건은 참사가 내 집 안방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줬다.
1994년부터 시장에 유통되기 시작한 가습기살균제는 2011년까지 최소 29만 명에서 최대 227만 명의 피해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며 1598명이 피해를 신고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개발됐을 때, 전체 가습기살균제 시장의 80%가량을 차지한 옥시가 제품 성분을 변경했을 때 유해성 검증을 제대로 했더라면, 수많은 어린이와 산모가 병원 응급실로 몰려들고 있었을 때 질병관리본부가 바이러스 검사만 하고 ‘연관성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다.
피해자들의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말은 “내가 죄인이 된 것 같다”는 말이었다. 내 가족을 위해 매일 가습기 물통을 갈고 세척제까지 넣어 소독했던 것이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당에 있던 나무가 쓰러졌을 때 끔찍한 ‘만약에’들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나는 고양이를 밖에 내놓고 벚나무를 그곳에 심은 가족을 탓했을까, 갑자기 불어온 바람을 탓했을까. 그곳에 나무를 심은 당사자를 대면할 수 없는 상황에선 하염없이 가족과 바람 탓만 했을 것 같다.
박예람 바람저널리스트 (www.baram.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