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보건복지부는 비급여 진료비에 대해 정부가 직접 조사해 그 실태를 공개한다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병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비급여 진료 항목·기준 및 금액을 직접 조사·분석해 그 결과를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6월 29일 복지부가 공개한 ‘하반기 주요 제도 변경사항’에 따르면 공개기관은 종합병원급, 한방·치과·전문병원 895기관, 공개항목은 초음파검사료, MRI진단료, 상급병실료 등 총 52개 항목이다.
비급여 진료비란 국민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법을 적용하여 치료받을 때 해당 법에 따라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치료항목의 비용을 뜻한다. 보험금이 지급되는 급여 부문에서 환자는 법정 20% 수준의 본인부담금만 치료비로 부담하지만, 비급여 부문에 대한 치료비는 고스란히 환자가 부담하게 된다.
이러한 비급여 진료비는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아 당국의 가격 통제도 없고, 조사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 다수의 병·의원이 보여온 과잉 진료 행태의 결과로 최근 몇 년간 실손보험 손해율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복지부에서 비급여 부문에 대한 체계적 조사 및 통제에 나선 것이다.
전혜숙 의원 ‘비급여 진료비 공개’ 법안 발의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의원급도 비급여 진료비를 공개하라'는 내용의 의료법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전 의원은 “진료받는 도중에 비용을 알게 된 환자가 비용부담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는 어렵다”면서 “비급여 진료비 정보에 대한 의료기관과 환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은 의료서비스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정보공개를 추진하게 됐다”고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전체 의료요양기관의 90%에 달하는 동네의원의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와, 진료비 변경이 있을 경우 최신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전 의원의 개정안 발의 이전에도 비급여 진료비 조사대상 의원급 확대 요구는 본 시행령의 입법예고 직후부터 서울YMCA 시민중계실 등을 통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난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질의에 대한 서면답변에 따르면 복지부는 "비급여 진료비용 등 현황조사와 관련해 조사대상 항목과 규모, 중요도 등을 고려해 병원급 의료기관을 우선 시행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11일 사회단체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개최한 비급여 진료비 진료현황 관련 토론회에서 “성형외과·치과 등 비급여 진료비용이 높게 발생하는 진료과목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실시한 다음 다른 과목으로 확대 실시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또한 비급여 진료비용 현황조사의 공개시기(4월 1일)를 매년 1회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 의원은 “보건복지부장관이 모든 의료기관에 대해 비급여 진료비용 등을 조사, 분석한 결과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의료이용자의 실질적인 의료기관 선택권을 보장하고 알권리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개정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모든 의료기관에 대해 비급여 진료비용과 제증명수수료 현황을 조사 분석해 그 결과를 실시간 공개하고, 의료기관 제증명수수료 항목 및 금액 기준을 정해 고시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전 의원은 "의료기관 이용자의 실질적인 선택권을 보장하고 알 권리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진료기록부 사본과 진단서 등 제증명 수수료도 일정 수준 금액을 고시해 국민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고 전국적인 편차를 줄여 과도한 수수료 비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비급여 진료 코드의 표준화 필요
전 의원의 발의에 이어 지난 11일에는 (사)소비자와함께, (사)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 남인순 의원이 국회에서 비급여 진료비용 현황조사 및 진료비세부내역서를 중심으로 ‘소비자는 알고싶다, 나의 비급여 진료비용’ 토론회를 열었다.
남 의원은 “비급여 진료에 대한 관리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비급여 진료 항목의 명칭, 코드가 병·의원들마다 서로 다르다”며 비급여 코드의 표준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2013년 기준 1만 6680개 비급여 진료 항목 중 진료명칭, 코드가 표준화된 항목은 9.7%(1611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이 지난해 전국 종합병원 대상 ‘진료비 세부 내역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상당수 병원이 건강심사평가원의 코드(EDI CODE)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코드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진료 항목과 코드에 대해 다른 가격으로 비용을 처리했으며, 75%의 병원이 전액본인부담금을 표시하지 않고 있었다. 김정숙 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장은 “의료기관마다 비급여 진료비 항목에 대한 코드가 다르고 가격분산이 심하여 소비자의 알 권리와 의료 서비스 이용 선택권이 제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의료비 부담을 과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급여 진료비 세부내역서 표준화는 2015년 국정감사에서부터 줄곧 제기되어온 문제이다. 진료비 계산서 및 영수증과 달리 ‘진료비 세부내역서’는 의료기관의 발급의무만 규정했을 뿐 정해진 양식이 없어 의료기관마다 서로 다른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표준서식이 없다 보니 의료기관별로 기재항목이 불충분한 경우도 많고 의료기관별로 기재내용이 상이하기도 하다. 소비자에게 혼란을 제공할 우려가 있고, 진료비 항목에 대한 비교 가능성도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러한 진료비 세부내역서 표준화 관련 제도개선을 위하여 관계기관 의견 수렴 및 초안마련을 진행 중인 상태다. 올해 하반기 중 표준서식안 및 실행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 정영훈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현재 비급여제도개선을 위한 TF팀을 구성하여 논의하고 있다”며 “비급여 현황조사 대상을 의원급까지 늘릴 예정이며, 52개의 공개항목도 계속해서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과장은 “비급여의 내용이 워낙 방대하여 항목의 표준화를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검토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시행령 실시를 9월 30일로 공표했다. 이에 따라 민간에 대한 비급여 진료비 자료 공개도 매년 4월 1일이나 올해는 시행시기를 감안해 예외적으로 12월 1일 비급여 진료비 자료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8월부터 간담회를 통해 의료기관별 항목 공개 등에 대해 알리고 9월부터 자료 수집에 들어갈 계획이다. 즉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2015년 국정감사 정무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당해년도 서울대병원 등 주요 5개 공공의료기관의 부당한 비급여 진료비 징수 건은 40만 건에 육박, 부당 징수 금액은 23억원을 초과하였다. 공신력 있는 의료기관이 환자가 판단이 어려운 점을 이용하여 진료비를 과다하게 부당 징수하는 동안, 환자는 진료비세부내역서가 병원마다 달라 진료비 적정여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사)소비자와함께 등의 주최로 열린 '소비자는 알고 싶다, 나이 비급여 진료비용' 토론회 모습. 사진/소비자와함께
정윤하 KSRN기자
편집 KSRN기획위원회(www.ksr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