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위원회 직속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4개월의 시간을 가진 끝에 금융정책 밑그림을 내놓았지만, '금융 혁신'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위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제한) 완화에 부정적 입장, 금융사의 근로자추천이사제(노동이사제) 도입 권고 등 문재인정부의 공약을 금융권에 이식하기에만 급급했다는 평가다.
금융행정혁신위는 20일 그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최종 권고안을 발표했다. 금융혁신위는 민간 전문가 13인으로 구성된 금융위내 특별 테스크포스(TF)로 지난 8월말 출범해 금융행정 관련 업부 전반의 쇄신방안을 마련해왔다.
당초 금융권에선 혁신위를 금융행정 자문기구 정도로 봤지만 금융당국의 정책을 기획할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석헌 서울대 객원교수는 범정부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도 이끌고 있다. 윤 위원장이 사실상 문재인정부의 금융로드맵을 짜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번 권고안은 금융감독 체계는 물론 인터넷은행 인허가, 금융회사 지배구조 등 금융권 주요 현안에 대한 개선방안을 총망라하고 있다.
먼저 혁신위는 금융공기업을 비롯한 민간기업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문재인정부가 국정과제로도 제시한 노동이사제는 노동조합 등 근로자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들어가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혁신위가 노동이사제 도입을 권고한 만큼, 금융위는 이를 수용해 금융공기업부터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자연히 민간 금융회사에 압박이 될 전망이다.
또한 혁신위는 최근 금융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권고안도 내놓았다.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격요건을 신설해 전문성 확보와 함께 낙하산 인사을 견제하도록 하고, 셀프연임 등을 견제할 수 있도록 임원추천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지배구조 감독 강화에 대한 혁신위의 권고안 역시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장치로 보고 있다. 실제로 혁신위는 금융사 지배구조의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며, 노동이사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그간 당국 수장들이 금융지주사 지배구조를 지적한 이면에는 노동이사제를 이식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친정부 성향인 노조가 노동이사제를 앞세웠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모양새"라고 말했다.
혁신위는 또한 인터넷은행의 숙원이었던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사실상 불허 입장을 밝혔다. 대신에 인터넷은행이 은산분리 완화 등에 기대지 말고 자체적으로 국민이 납득할만한 발전방안을 제시하도록 권고했다.
특히, 혁신위는 "현 시점에서 은산분리 완화가 우리나라 금융발전의 필요조건으로 보고 있지 않으며, 인터넷은행과 핀테크를 동일시 하지않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은산분리 원칙 고수는 문재인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정부는 은산분리 완화에 대해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 상당수가 반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산분리 완화가 현 정부에서는 사실상 백지화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은산분리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은행지분을 최대 10%(의결권 있는 지분은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이다. 올해 출범한 인터넷은행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가입자수가 5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금융권 파장을 일으켰지만, 추가 자금 조달 여력이 부족해 생존 기로에 있는 상태다.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인터넷은행과 핀테크를 동일시 하지 말라는 정부의 시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다른 나라에서는 각국 정부의 지원 아래 금융ICT 융합 기업들이 재편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이런 글로벌 상황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 같은 혁신위의 최종권고안에 대해 오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당국의 입장 및 이행계획을 밝힐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혁신위 권고안 가운데 이행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는 자리가 되겠지만,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거나 '노사 합의가 중요하다'는 식의 원론적인 입장에 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석헌 서울대 객원교수가 20일 정부서울청사 통합브리핑실에서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최종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