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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님비현상으로 포장된 ‘갑질’과 차별
입력 : 2018-06-04 오전 8:00:00
‘님비(NIMBY)’는 ‘이권’과 ‘인권’을 구별해 이해하게 하는 일반적인 설명방식이다. 표면적인 반대 이유로 주거환경, 건강, 안전, 교육환경 등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들지만 이면은 다르다. 노숙자나 장애인 등 약자에 대한 혐오, 또는 집 값 하락을 염려하는 지역 이기주의가 사실상 원인인 경우 이를 이권이라 한다.
 
한편 원자력 발전소, 화장터, 쓰레기 매립장 등 공익적 목적의 시설 건립이라도 주민의 동의를 충분히 구하지 않을 경우, 주민의 주거나 교육 환경에 대한 자기 결정권 침해라는 관점에서 인권이 침해당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사회적 허가 여부에 따라 이권 문제가 인권 문제가 되기도 한다.
 
법적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사회적 허가를 득하는 데 실패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공익적 목적의 시설이든, 개발이 목적이든 국가기관, 공기업 등 공공기관, 민간기업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다. 사회적 허가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기저에는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 즉 자기결정권이 있다.
 
근자에 님비현상과 관련된 두 개의 기사가 뉴스 포털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미국 LA 한인 타운의 여성 노숙자 쉼터 설치 계획에 대한 한인들의 반대가 역풍을 맞고 있다는 기사(노컷뉴스, 5월 16일)와 대구에서 아파트나 빌라에 장애인 공동주택 가구 입주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연판장이 붙은 기사(한국일보, 5월 31일)다.
 
한인 타운 주민들의 노숙인 쉼터 건립 반대 이유는 “LA시장은 주민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건립을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허가의 부재를 근거로 든 것이다. 다른 사례의 반대 근거도 유사했다.
 
기사를 접한 여론의 반응은 이와 달랐다. 사회적 허가 부재를 이유로 LA당국이나 대구광역시를 향해 비판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자기결정권 문제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주민들에게 약자 또는 약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없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여성 노숙인은 당신의 엄마·딸처럼 안전할 자격이 없나”, “한인 타운은 잊었나? 노숙인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라고 일갈하는 문구가 분위기를 대변한다.
 
대구시 장애인공동주택 입주 반대는 따질 것도 없이 명확하게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침해다.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신의 거주지 및 동거인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며, 특정한 주거 형태를 취할 것을 강요받지 아니한다.”(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장애인은 자신의 생활 전반에 관하여 자신의 의사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장애인차별금지법 제7조)
 
민간 기업을 향해서도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용과 직장생활 전 과정에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는 시대에, 앞서 기술한 조문들이 현실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자니 허탈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여성, 아동, 노동자(특히 이주노동자) 관련 국제규범들도 다르지 않다. 사람이면 누구나 누릴 권리를 여성도, 아동도, 장애인도, 이주노동자도, 가난한 이도 그런 권리가 있음을 굳이 다시 강조해야 하니 말이다.
 
사회적 가치 보호와 증진 정도를 척도로 조직이 평가받는 시대다. 우리사회가 사회적 책임을 지향하고 모든 구성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개인적 수준으로 접근하면 ‘약자의 인권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갑질’ 논란과 그에 대한 분노는 우리 사회 사회적 책임 실태와 개선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수용 시설을 나와 비장애인들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겠다는 장애인들을 막아서고, 길거리 여성 노숙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쉼터를 반대하는 것은 ‘님비’로 포장된 ‘갑질’일 뿐이다. 더 나아가 약자에 대한 인권존중 의식 부족을 넘어 엄연한 차별행위다.
 
김용구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사무차장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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