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현 기자] 정부의 허위조작정보 규제 방침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학계를 중심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허위사실 판단 주체가 모호해 자칫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최근 정부는 잇달아 가짜뉴스 제작과 유포를 엄단할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짜뉴스를 '공동체 파괴범', '민주주의 교란범' 등에 비유했다. 앞서 지난달 10일에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국민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명백한 허위조작정보를 척결해야 한다"며 가짜뉴스를 허위조작정보로 정의해 규제 대상을 구체화했다. 또 지난달 16일 법무부는 허위조작정보 처벌 강화 방안을 발표해 허위조작정보를 '객관적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위사실'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5일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가짜뉴스와 허위조작 정보, 표현의 자유의 위기' 토론회에선 이같은 방침이 표현의 자유를 옥죌 수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먼저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정부가 모호한 범위의 '가짜뉴스'를 '허위조작정보'로 구체화해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부정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허위조작정보를 규정할 때 규정하는 당사자가 누구인지 모호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사법·행정권이 자의적 판단으로 허위조작정보를 규정할 경우 권력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 역사는 공론장에서 한 발언 행사의 자유에 기반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누가 내용의 사실 관련성, 허위성, 악의성 등을 판단할 수 있나. 위법성을 처벌하는 행정 관련의 명령 근거가 될 수 없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준웅 교수 역시 이 총리의 발언과 관련해 우려를 드러냈다. 이 교수는 "최근 민주주의 교란의 원인이 가짜뉴스 때문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해외에서는 민주주의 교란의 원인을 경제적 불평등에 원인을 돌리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 스스로 허위 정보를 공론장에서 밀어낼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용자들이 기존 생각을 다르게 볼 공론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가짜뉴스 소비자는 뉴스를 소비하며 그들만의 가치관을 형성한다"며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틀린 삶이라고 주입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정부안을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일방적 규제가 아닌 생각과 가치관을 되돌아 볼 기회·채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 위원장은 법무부 방안이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처벌 방안을 발표하며 ▲객관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의견 표명 ▲실수에 의한 오보 ▲근거 있는 의혹 제기 등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기성 언론의 보도는 처벌 대상이 안 되고 비언론 기관이 하면 처벌 대상이 되는가"라며 반문하며 "법무부 대책이 말하는 허위조작정보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불명확해 헌법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강혁 위원장은 기성 언론과 비언론 기관의 구분 역시 모호하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앞서 법무부는 언론중재법상 언론기관이 아님에도 언론 보도를 가장해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같은 대응은 취재·편집·배포 등 언론 기능을 수행하는 1인 미디어 채널의 증가라는 최근 사회 변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 따른 발상이라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언론으로 정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자유를 제한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허위조작정보 유포는 언론중재법상 언론기관에 의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5일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가짜뉴스와 허위조작 정보, 표현의 자유의 위기' 토론회. 사진 왼쪽부터 이강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 위원장,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영욱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실 실장. 사진/김동현 기자
김동현 기자 esc@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