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29일 열리는 ‘한국형 CES’ 행사에 기업들의 속앓이가 크다. 열흘이라는 짧은 준비기간도 그렇지만 정부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참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정부 주도로 열리는 행사가 아니라 기업들과 협회가 먼저 제안했다는 입장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29일부터 사흘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한국판 CES 격인 ‘한국 전자IT 산업 융합 전시회’가 열린다.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9의 축소판이다. CES 2019에 참석했던 국내 기업 400여개 중에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SK텔레콤 등 대기업과 국내 스타트업 등 30~40개 업체가 참여한다. 다만 현대차와 기아차는 CES 출품작 가운데 상당수가 미국 현지에 있어 참석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초대형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TV, 삼성봇,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 등 비롯한 가전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한다. LG전자는 세계 최초의 롤러블 TV로 주목받은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인공지능(AI) LG 씽큐가 탑재된 가전제품, 로봇 클로이 등을 선보인다. 네이버, 코웨이, 삼성전자 사내 벤처 C랩 출신 기업 등 CES 혁신상 수상 기업도 참여한다.
한국형 CES로 추진되고 있는 한국 전자IT 산업 융합 전시회 포스터. 사진/산업부
이번 행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등과 논의해서 기획했다는 설명이다. KEA 관계자는 “미국 CES에서 많은 국내 중소기업들이 부스를 차렸고 많은 관심이 있었다”면서 “한국에서도 시민들이 혁신 제품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있어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지난 25일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 지시로 시작된 것처럼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CES 참가 기업, 협회, 단체들이 'CES에서만 끝나는 게 아깝다, 거기 선보인 최첨단 기술들을 국내까지 확산시키고 싶다'고 먼저 건의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부 등이 일반인도 볼 수 있는 행사를 하기로 결정해 비용도 전시 참여 기업들에 부담이 안 되도록 주관기관이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 발표와는 달리 막상 행사를 기획했다는 기업들은 회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기업들이 먼저 정부에 건의한 게 아니라 산업부를 통해 행사 개최 열흘 전쯤 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됐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관계자는 “통상 전시회를 준비하는 데 2~3개월, 길게는 6개월씩 소요된다”면서 “이제 막 CES에서 돌아왔는데 열흘 만에 다른 전시회를 준비하라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의 한 관계자는 “그 행사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면서 “청와대에 물어보라”고 다소 날선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할 수 있다는 소식에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참가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행사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CES는 전 세계 기업들이 참가해 다른 기업들의 제품을 관람하고 관계자들을 만나 사업의 기회를 찾는 행사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정부 관계자들과 적은 수의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보여주기 식’ 행사가 될 공산이 크다. 매년 10월 KEA 주최로 열리는 한국 전자전과 행사 성격이 겹친다는 의견도 있다. 기업의 한 관계자는 “CES는 바이어들을 만나고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중요한 기회이지만 홍보도 잘 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이번 행사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자율 참여 행사’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기업들에 참여를 강제하지는 않았다”면서 “만약 참가가 힘들다면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