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삼성·현대차·SK·LG 등 주요 기업들의 이사회 독립성 강화 방안이 확산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것이 주요 이슈다. 기관투자자들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강화 방침에 대응하는 동시에 책임경영과 경영투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조치라는 분석이다.
지난 15일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이날 주주총회에서 권영수 LG 최고운영책임자(COO) 부회장을 기타 비상무이사로 선임하고 이후 열린 이사회를 통해 권 부회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권 부회장은 이날 LG유플러스 신임 이사회에도 합류했다.
LG는 2003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이사회가 대표이사를 견제하는 선진적인 경영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취지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했었다. 하지만 2017년 LG전자가 조성진 대표이사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면서 다시 1인체제가 됐다. LG디스플레이도 한상범 부회장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했었다. LG는 2년 만에 다시 CEO-의장 분리체제로 전환했다. 조 부회장과 한 부회장은 CEO로서 경영에 전념할 방침이다.
앞서 SK㈜도 지난 5일 열린 이사회에서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직을 겸직하도록 했던 기존 정관을 변경하는 안건을 오는 27일 주주총회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SK㈜ 정관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게 돼 있고 이사회 결정에 따라 최태원 SK㈜ 대표이사 회장이 의장을 맡아왔다. 이번 정관 변경안이 주총을 통과하면 이사회 결정에 의해 이사 중 한 명이 의장을 맡아 사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소집하고 이사회의 모든 회의를 주재하게 된다. SK는 이사회 의장에는 염재호 고려대 총장을 내정해 처음으로 사외이사에게 이사회 의장을 맡기게 된다.
현대자동차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장을 사외이사가 맡기로 내규를 바꿨다고 최근 공시했다. 이에 따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대신 사외이사 최은수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가 위원장이 됐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대표이사가 되더라도 사외이사 중심으로 이사회를 운영하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또 일반 주주가 추천한 인사를 주주권익담당 사외이사로 앉혔다. 외부평가자문단 자문을 거쳐 윤치원 UBS그룹 자산관리부문 부회장이 사외이사 후보에 올랐다. 현대모비스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 전문가 2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2020년에는 주주 추천을 통한 사외이사도 선임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이미 2016년에 정관 변경을 통해 사외이사도 이사회 의장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상훈 경영지원실장 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해 대표이사와 의장직을 처음으로 분리하며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추진했다. 삼성전기는 2016년부터 주주친화 경영을 위해 사외이사에게 의장직을 맡겨왔다. 한민구 서울대 교수, 이승재 전 해양경찰청장에 이어 2018년부터 권태균 전 조달청장이 의장을 맡고 있다. 송민경 한국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코드센터장은 “주주제안으로 가장 많이 올라오는 안건 중 하나가 CEO와 의장의 분리”라면서 “최고경영진이 의장이 되면 이사회 운영에서 기업의 이권 개입을 막기가 어렵지만 분리돼있는 경우는 이사회가 경영진을 관리·감독하는 효과가 제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CEO와 의장이 분리된다고만 해서 이사회 독립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구성에서 주주 직접의 영향력을 높이거나 사외이사도 회사 운영에 관한 책임을 지도록 하면 이사회 독립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송 센터장은 “미국에서는 이사회 규모가 크고 사내이사는 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만 포함돼있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사외이사 비중이 높다. 유럽에서는 경영진들로만 이뤄진 경영이사회와 외부 인사들로 이뤄진 감독이사회가 있는데 감독이사회에는 주주대표나 노동자대표도 들어간다”면서 “우리나라도 이사회 규모를 키우고 사외이사 비중을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로 구성해야 독립성과 전문성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미국에는 독립 사외이사라는 제도가 있는데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독립 사외이사는 그 책임감과 소송의 위험이 커진다”면서 “우리나라도 사외이사 책임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선제적으로 주주 추천 사외이사를 도입하며 이사회 독립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는데 사외이사 추천과 후보 등록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는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