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노트북. LG 그램에 따라오는 별명이다. 지난 1월 LG전자가 내놓은 LG 그램 17은 세계 기네스 협회로부터 미국, 영국 등 7개국에서 판매 중인 약 150종의 17인치 노트북 중 가장 가볍다는 인증을 받았다. 이로써 LG전자는 14형, 15.6형에 이어 모두 3개의 기네스 세계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말 그대로 혁신적이었다. 2014년 980g 노트북의 탄생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만 해도 일반적인 경량 노트북의 무게가 1㎏이 훌쩍 넘고 어댑터까지 하면 1.5㎏는 기본인 때였다. LG전자는 기본 설계부터 뜯어 고치고 가벼우면서 튼튼한 소재를 적용해 ㎏의 벽을 허물었다. 이후 배터리 용량을 늘리고 화면 크기를 키우면서도 기존 무게를 유지하는 진화를 끊임없이 이뤄냈다. 더 이상의 혁신은 불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LG 그램 17을 내놓으며 ‘대화면과 가벼움’의 상반된 요구를 모두 충족시켰다. “‘소비자들에게 무엇을 더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라고 말하는 인정근 PC기구팀 책임연구원, 이동한 PC마케팅팀 책임, 안대성 PC상품기획팀 선임에게 그램의 탄생 비화를 들었다.
LG전자 그램 17은 기네스 협회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17인치 노트북'이라는 인증을 받았다. 사진/LG전자
이들은 노트북의 본질에 집중한 것이 초경량 노트북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동한 책임은 “지난 2011년 울트라 PC의 성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소비자들에게 무엇을 더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서 “이윽고 ‘들고 다니면서 사용하기에도 거추장스럽지 않은 PC를 제공해 보자’는 생각에 착안해 그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울트라북 기준으로 15형 판매량이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형 노트북을 만들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3년 이상 패널을 제공하는 LG디스플레이, 배터리를 공급하는 LG화학과 머리를 맞댔다. 안대성 선임은 “기술적으로 처음부터 만들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기술력이 부족했다”면서 “단계적으로 13형의 불만은 14형으로 가면서, 14형의 불만은 15형으로 가면서 해소해 완성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또 “고객 조사를 많이 해보니까 무게만큼 중요한 것이 휴대성이었다”면서 “가볍고 오래 사용하는 배터리를 넣는데도 시간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17형 노트북을 내놓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제품 시장이 15형에 맞춰져 있다 보니 17형을 내놨을 때 판매가 될지, 혹은 15형 시장을 축소시키지는 않을지가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볍기만 하다면 클수록 좋다’는 요구에 맞춰 연구개발에 돌입했고 마침내 ‘15형 같은 17형’ 노트북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LG 그램 17은 화면의 베젤을 줄여 열면 17형, 닫으면 15.6형 수준이다. 무게도 일반 13형대 노트북 무게와 비슷한 1340g 정도다. 인정근 책임연구원은 “편견을 깨는 게 중요했다”면서 “처음 기획 단계에서 17형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렇게 큰 제품을 만들어서 팔리겠는가 생각했는데 결과는 좋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장도 개척했다. 이 책임은 “본격적으로 15형 이상 시대를 견인했다고 본다”면서 “17형이 나오면서 15형 이상의 판매 비중이 70%를 육박하고 있고 판매량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이상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안대성 PC기획팀 선임(왼쪽부터), 이동한 PC마케팅팀 책임, 인정근 PC기구팀 책임연구원이 LG 그램 17을 들고 웃고 있다. 사진/LG전자
처음 시장을 개척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막상 시장이 열리고 나면 경쟁자들은 빠르게 따라잡는다. 에이서는 980g으로 무게를 줄인 15.6형 스위프트5를 내놨고 에이수스도 1㎏ 남짓의 13형 뉴 젠북 13을 출시했다. LG전자는 이들 경쟁자와의 차이가 더 이상 무게에만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책임은 “처음에 그램은 가장 큰 강점이 무게라고 설명했지만 매년 노하우를 쌓으면서 소비자들의 숨겨진 요구사항을 찾아 결과물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16대9에서 16대10으로 화면비를 늘린 점, 풀HD에서 2560X1600 WQXGA IPS 디스플레이로 해상도를 높인 점, 72와트시(Wh)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점 등이다. 1280 화면을 2개 사용할 수 있는 셈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멀티태스킹이 가능하고 최대 28시간 사용할 수 있는데다 동영상 재생 시에도 18시간 이상을 볼 수 있다. 그는 “15형까지는 풀HD였는데 17형으로 가면서 화면만 키우는 것은 의미 없다, 더 많은 것을 담자고 생각해서 해상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17형 노트북은 기존 PC영역까지 넘본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이 노트북으로 단순히 엑셀, 파워포인트 등 문서작업만 하는 게 아니라 이제 고성능 게임, 그래픽 편집, 유튜브 동영상 편집 등까지 하는 점을 착안, LG 그램 17에는 선더볼트3 단자를 지원하도록 했다.
무게, 해상도 등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핵심은 내구성이었다. 그램은 ‘밀리터리 스펙’으로 알려진 미국 국방성 신뢰성 테스트의 7개 항목(충격, 먼지, 고온, 저온, 진동, 염무, 저압)을 통과해 내구성을 인정받았다. 인 책임연구원은 “가볍게만 만들면 더 가볍게 해서 1200g대로도 만들 수 있었지만 무게가 조금 늘어나더라도 내구성에 더 신경을 쓰고자 했다”면서 “알려진 항목은 7가지이지만 내부적으로 실질적인 테스트 항목은 20가지가 넘는다”고 말했다.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이지만 소비자들의 불안감 해소를 택했다.
LG전자가 강세인 한국 시장에서와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는 HP, 레노보, 델 등 강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LG전자는 미국, 일본, 중국 등을 중심으로 15형 이상의 제품군을 앞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갈 계획이다. 이 책임은 “글로벌 시장에서 15형부터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17형 신제품도 유력 매체에서 지속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랩톱매그(laptopmag)는 5점 만점에 4점을 부여하며 “환상적인 배터리로 엄청난 디스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역사상 가장 가벼운 랩탑”이라고 평가했다. 윈도우 센트럴(Window Central)은 베스트 오브 CES 2019로 LG 그램 17을 선정하며 “당신이 매우 작은 17형 노트북을 빠른 속도로 작업하길 원하는 크리에이터라면 그램이 정답이다”라고 설명했다.
제품의 콘셉트와 디자인, 정체성의 한 길을 고수했다. 이제 그램은 브랜드가 되고 팬덤도 생겼다. 향후 목표와 그램의 개발 방향성에 대해서는 ‘고객이 원하면 한다’는 대답을 내놨다. 이 책임은 “소비자들을 상당히 많이 관찰하면서 새로운 기능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지 보고 있다”면서 “그램의 탄생과 진화는 모두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방향으로 혁신이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