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중기적합업종 지정이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생계형 적합업종’까지 도입되는 등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자율적으로 이뤄지던 기술적 협업마저 사라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업계는 중기적합업종 지정으로 경쟁력 약화는 물론 소비자 후생까지 저하되는 부작용이 나오고 있어 중소기업 보호라는 취지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중기적합업종 제도가 중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적합업종으로 적용을 받는 중소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제도 시행 이전보다 떨어졌다. 중기적합업종이 시행된 2012년 이후 2년간 해당 기업의 매출은 시행 전 2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 16.6%보다 하락한 3.9% 증가에 그쳤다. 이는 제도 시행 이전보다 무려 12.7%나 떨어진 수치다. 총자산증가율 역시 같은 기간 12.2%에서 6.3%로 5.9%로 감소했다.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에 무색하게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진 역효과로 귀결된 셈이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업종을 구분하는 칸막이식 규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은 해외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중기 적합업종 제도의 역사는 지난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다가 중기적합업종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 때문에 2006년에 폐지됐다. 이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강제성이 없는 민간 자율합의 방식으로 운영돼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생계형 적합업종이 도입되면서 해당 업종에는 대기업이 5년간 사업을 확대할 수 없게 했고 위반 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해외에서도 중기적합업종 제도를 도입한 사례도 있었으나 경쟁력 제고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결국 폐기처분됐다.
인도의 경우 지난 1967년 소기업을 보호하고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우리나라와 유사한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1991년 자유화정책 추진이후 2000년대 초부터 소기업 품목보호 정책을 빠르게 축소·폐지했다. 유럽 역시 1970년대 이후 대기업의 특정 업종 진출을 막는 법안은 사라졌다. 일본의 경우에도 대기업이 중소기업 사업 영역을 침범했을 때 중소기업이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는 있지만 대기업의 특정 업종 진입 자체를 처음부터 차단하지는 않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해외의 경우 소기업 보호해제 이후 중소기업 부문의 경쟁력이 오히려 향상된 사례도 다수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중기를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는 ‘규제’ 정책보다는 기술 개발·인적자원·세제 혜택 등 ‘지원’에 방점을 두는 게 성장에 효율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자율적 교류와 네트워크 조성 등 민간의 주도하에 경쟁과 협업 생태계가 조성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실제 ‘강소기업의 천국’이라 불리는 독일은 업종별 조합과 협회가 기업 간 네트워킹을 도맡아 대기업간의 교류를 통해 상생을 넘어 자율 경쟁의 모범이 되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독일에서는 협회가 중심이 돼 자율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영업 및 기술교육, 브랜드 개발, 아이템 개발을 하고 있다”면서 “또 대기업들의 사업계획이 나오면 관련 분야의 중소기업들과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주도로 하는 게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해야 더욱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