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권안나 기자] 미국 정부와 중국 화웨이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화웨이의 위기가 국내 기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과 화웨이가 부진하면 국내 부품사들도 덩달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이 엇갈리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화웨이와의 거래를 하지 않을 방침이다. 특히 구글은 이미 화웨이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오픈소스를 제외한 서비스 제공을 중단했다. 화웨이의 기존 스마트폰은 OS 업데이트가 불가능하고 향후 출시되는 신제품은 플레이스토어를 설치할 수 없으니 지메일, 유튜브, 크롬 등 구글의 전용앱도 사용하지 못 하게 된다.
화웨이는 당장 스마트폰 판매량의 49% 담당하는 해외 시장에서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중국 시장에서야 기존에도 구글 플레이를 사용하지 못했고 현지에서는 바이두나 텐센트 등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유럽, 중남미 등 주요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기반의 유튜브, 지메일 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점은 판매량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 퀄컴 같은 반도체 업체들의 칩 공급중단 선언 역시 화웨이에게는 치명적이다. 화웨이는 3달 분량 이상의 반도체 칩과 핵심 부품을 확보해놨다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요를 감당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에는 기회일 수 있다. 지난 1분기 기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SA)에서 화웨이에 불과 3.8%포인트로 쫓기던 삼성전자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됐다. 2020년 삼성전자를 제치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화웨이의 계획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SA는 미국의 제재가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올해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량이 예상보다 1억대 이상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감소분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경쟁사의 판매량으로 이전될 것으로 보인다.
5G 통신 장비 시장에서 내년까지 20% 점유율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전자에도 공격적으로 늘릴 기회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통신 장비 시장에서 31%로 1위를 차지한데다 5G 표준 필수 특허(1529건) 역시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다. 미국은 화웨이 5G 장비 사용 금지 대상을 영국·캐나다 등 동맹국으로까지 확대해왔다. 화웨이 5G 통신 장비 보이콧이 유럽 등지까지 확산될 경우 5G 분야에서 세계 강자로 부상하겠다는 화웨이의 야심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제재로 화웨이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하락은 불가피한 반면 삼성전자 점유율 확대의 요인이 생겼다”면서 “통신 장비 시장에서도 화웨이가 주춤하는 사이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마냥 호재인 것만은 아니다. 화웨이 전자제품 판매량 감소가 국내 부품사들의 입장에서는 매출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의 서버·PC·모바일용 메모리 반도체 공급 업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뿐만 아니라 이미지센서 등 시스템반도체도 화웨이에 판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삼성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부터 애플, AT&T, 도이치텔레콤, 버라이즌 등과 함께 삼성전자의 주요 5대 매출처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번 분기 5대 매출처가 전체 매출(52조3855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로, 6조3000억원에 이른다. SK하이닉스 역시 화웨이 부품 비중이 다소 높은 만큼 타격이 클 전망이다.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등 디스플레이 제조사와 LG이노텍·삼성전기 등 카메라모듈 공급 업체들도 영향권이다. 화웨이가 향후 스마트폰 신모델에 플라스틱 유기발광다이오드(P-OLED) 패널과 트리플 카메라 등 고사양 부품 채택을 대거 채택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이들 입장에게는 잠재고객을 잃은 셈이 된다. 특히 LG디스플레이는 중소형 OLED 고객사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고, LG이노텍은 애플이 아닌 업체로의 고객사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매력적인 고객사 한 곳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됐다.
화웨이의 통신 장비를 채용하는 업체들에게도 고민거리다. 4세대(4G) 이동통신 때부터 화웨이의 장비를 늘려 온 LG유플러스의 경우 미국과의 거래가 끊긴 화웨이 장비에서 품질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위험 요소를 안고 가게 됐다. 특히 경쟁사들이 이 같은 상황을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할 경우 고객 유치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왕해나·권안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