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국내 주요 그룹들이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한 조직의 ‘순혈주의 타파’에 나서고 있다. 경쟁사 인재는 물론 외국인이라도 핵심 사업 경쟁력 확보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영입하는 추세다. 연공서열식 인사와 수직적 의사결정 체계가 조직의 경쟁력을 떨어트린다는 판단에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로봇 등 미래 신사업 연구인력 모시기에 한창이다. 지난 3월 저전력·고성능 AI 프로세서 분야의 권위자인 위구연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 데이터 분석 전문가인 장우승 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의료로봇연구단장을 역임한 강성철 박사 등 7명을 영입했다.
또한 삼성전자는 구글과 타임워너 등에서 중책을 맡았던 데이비드 은 삼성넥스트 사장을 지난해 최고혁신책임자(CIO)로 임명했다. AI 분야 거물급 인재인 세바스천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대니얼 리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를 부사장급으로 파격 영입하기도 했다. 같은 해 영입한 레리 핵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 음성인식개발담당 전무 역시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을 거친 인재로 꼽힌다.
현대자동차는 가장 활발하게 외부인재를 영입하고 있는 곳 중 하나다. 현재 회사 운영, 연구개발, 디자인 등 자동차 기업의 핵심 3개 조직 책임자가 모두 외국인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닛산 최고성과책임자(CPO) 출신인 호세 무뇨스를 사장으로 영입해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했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알버트 비어만 사장을 연구개발 총책임자에 올렸다. 그는 BMW의 고성능 브랜드 M에서 일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성능 브랜드 N을 만들었고, 그가 개발한 i30N은 2017년 이후 지난달까지 해외에서만 1만5765대 팔렸다. 2006년 기아차 디자이너로 영입된 피터 슈라이어 사장 또한 기아차를 상징하는 패밀리룩 ‘호랑이코’ 그릴 도입이라는 성과를 냈다.
LG그룹마저 그룹의 특징 중 하나로 지적돼온 순혈주의를 줄이고 외부 수혈을 강화하고 있다. LG화학의 최고경영자(CEO)에 글로벌 첨단소재 기업인 3M 출신의 신학철 부회장을 전격 선임하는 깜짝 인사를 냈다. 또 글로벌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 한국대표 출신인 홍범식 사장을 ㈜LG 경영전략팀장으로, 이베이코리아 출신 김이경 상무를 ㈜LG 인사팀의 인재 육성 담당으로, 한국타이어 글로벌구매부문장과 연구개발본부장을 역임한 김형남 부사장을 ㈜LG 자동차부품팀장으로 각각 임명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 출신으로 세계 최대 중앙처리장치(CPU) 업체인 인텔에서 10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CJ는 계열사 CEO 12명 중 7명을 외부인사로 채웠다.
새로운 인물 영입은 3,4세 경영인이 전면에 나서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인재 제일주의’를 내세워 인재가 있는 곳이라면 직접 찾아가 스카우트를 제의하는 것도 젊은 총수들의 특징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수직적 의사 결정 구조, 상명하복 문화가 더 이상 미래 신산업을 발굴하는 데 통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한 역량과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가진 인재를 중용해 조직 혁신을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기존 인력들과 새로 영입한 인력들과의 경쟁구도를 통해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선두 기업을 따라잡는 전략이 중요했고 그런 전략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순혈주의가 상당히 도움이 됐다”면서도 “빠르게 산업구조가 변하고 있는 지금은 그런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외부 인재 영입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