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상저하고에서 상저하저로…' 반도체 산업의 하반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식어가고 있다. 2분기를 넘기면서도 좀처럼 고객사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데다 일본 수출규제 등 대외환경의 불확실성도 겹친 탓이다. 다만 반도체 업체들의 잇단 감산과 설비투자 축소 등으로 예상보다 빠른 시장 회복을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반도체 업계 내에서는 ‘2분기에 시황이 바닥을 찍고 반등을 시작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지난 25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한 SK하이닉스는 수요 회복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글로벌 무역마찰이 격화하면서 수요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고, D램 매출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서버 업체들의 투자 지연을 불러왔다는 설명이다. 차진석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부사장)는 “D램 재고 수준은 낮아지고 있으나 보수적인 구매 정책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올해 서버용 D램 수요 증가 속도는 작년에 비해 크게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요 부진으로 재고도 쌓여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재고 자산(3월 기준)은 각각 14조5796억원, 5조1175억원이다. 김석 D램 마케팅담당 상무는 “2분기 말 D램 재고는 예상보다 늘어났다”며 “하반기 재고 감소 속도도 당초 전망보다 느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오는 하반기 적자를 낼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확산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들도 저마다 하반기 시장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꾸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올해 들어 현재까지 반토막 난 D램 가격이 3분기에 15%, 4분기에 10% 더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 감소, 서버 수요 둔화 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가트너 역시 “D램 시장의 공급 과잉으로 2019년 반도체 가격은 42.1% 하락하고, 이 공급 과잉 현상은 내년 2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업체들은 이례적인 감산을 결정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D램 생산 라인 일부를 이미지센서 제조 라인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당초 10%으로 정했던 낸드플래시 감산 폭은 15%까지 늘렸다. 앞서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 6월 D램과 낸드플래시 웨이퍼 투입량을 각각 5%, 10%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도시바 낸드플래시 공장에서 발생한 정전 사고는 글로벌 생산량을 감소시키는 데 일조했다.
장기적인 업황 예측이 어려워 감산과 증산에 신중해야 하는 반도체 업계에서의 이 같은 결정은 업황 전망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동안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삼성전자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늘어나는 재고 수준을 조절하기 위해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초 하반기에는 업황이 회복될 것으로 봤지만 현재로서는 내년 초까지 장기 불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면서 “반도체 업체들은 공급량을 줄여서라도 불황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