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경사노위
)가
1기를 마감하고
2기 출범을 준비 중이다
. 문재인대통령은
9월
20일 경사노위 상임위원을 교체하고
, 본위원회 위원
11명을 새로 위촉해
, 2기 본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했다
. 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 문제로 본위원회가
5개월 이상 열리지 못하자
, 문성현위원장은 본위원회 위원 일괄 사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 청년
, 여성을 대표했던 계층별 위원들은 사표 제출을 거부한 상태에서 해촉됐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시민단체들은 9월2일 공동성명을 통해 “계층별 위원들은 최선을 다해 의제별 위원회의 논의 과정과 내용을 살펴 여성과 청년, 비정규직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자 애썼고 그 역할과 권한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사회적 대화는 명령과 지시가 아니며 경사노위는 정책 세탁을 위한 기구가 아니다. 경사노위는 법이 밝힌 목적대로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조직이어야 하며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반영하는 사회적 대화를 위한 기구로 작동해야한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경사노위 2기 본위원회 위촉 및 출발이 매끄럽지 않다. 내홍을 겪은 경사노위가 성찰과 혁신을 통해 정상화되길 기대해 보지만, 경사노위를 둘러싼 환경과 여건은 녹녹치 않다. 정부의 노동정책 개혁 의지는 갈수록 후퇴하고, 민주노총은 투쟁 방침을 고수한 채 경기장 바깥에 있다. 경총은 노동존중사회와 어긋나는 사용자의 권한 확대 방안을 논의하자고 어깃장이다.
지난 1년의 경사노위 운영과 활동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가 가능한 정책인가 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노사정 주체 모두 타협과 공존을 통한 공통 이익보다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자기 이익 극대화 전략만 고수했다. 난관에 봉착해 있지만 사회적 대화의 실험은 지속되어야 한다. 현재의 파편화되고 분산된 단체교섭 구조를 갖고서는 노사관계를 조율하고 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별노조와 기업단위의 교섭구조는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이고, 노동의 하층 연대를 가로막는 핵심 원인이다. 다가오는 산업구조 및 노동시장 개편에 대응하기 위한 노사정 간 논의 및 협력이 시급하지만 현실은 갈지자걸음이다. 독일은 산업 4.0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속노조 등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의 플랫폼을 형성해 노동 4.0 녹서와 백서를 만들었다.
사회적 대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대화 없이 한국 노사정이 함께 직면하고 있는 노동시장 양극화, 청년고용 창출, 제조업 경쟁력 강화, 사회안전망 확충, 경영참여 등 산업 민주주의 구현을 실현 할 수 없다. 더디더라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난제에 도전할 때 문제 해결의 실효성도 높아진다.
2기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기구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1년 전 노사정위원회를 경사노위로 바꾼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칙이 흔들리고 방향을 잡지 못하면 경사노위의 실험은 사회적 대화의 흑역사로 귀결될 수도 있다. 경사노위는 합의 기구가 아닌 협의기구의 위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사노위법 제1조(목적)는 경사노위가 ‘협의기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과거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 간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 정책이 ‘합의’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관철되었던 잘못을 막기 위한 약속이었다. 사회적 대화기구는 ‘합의’를 추구할 수 있지만 현재 노사정간의 신뢰 수준은 ‘숙의 민주주의’의 과정과 단계를 더 강하게 요구한다.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합의처럼 공론화 없는 정부 주도의 합의안 관철은 노사갈등만 촉발할 뿐이다. 취약계층의 적극적 포용이 필요하다.
경사노위가 과거와 구분되는 특징은 노사의 정상조직이 포괄하지 못했던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사회적 대화기구에 담는 것이었다. 계층별 대표들의 역할 보장을 위해서는 시급히 계층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들이 경사노위의 사업과 활동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하여야 한다. 또한 취약계층노동자들의 요구를 사업에 직접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공론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대화의 내실화를 위해 업종과 지역 수준의 중층적 협의 틀을 발전시켜야 한다. 전국 단위의 사회적 대화의 뿌리는 업종과 지역이다. 다양한 업종별 협의 구조를 만들고, 지역이 일자리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사정간 신뢰 회복과 역량 강화이다. 사회적 대화의 열매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 꽃피는 것으로 단기성과에 집착해선 안 된다. 외환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 없이 일상 시기에 노사정간 합의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지금은 합의가 아닌 함께 이야기할 공통분모 찾기와 충분한 협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처럼 노력 없이 씨도 뿌리지 않고 열매를 찾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다. 노사정의 상호 인정과 공통 이익을 기반으로 한 논의 없이 사회적 대화는 한 발도 전진할 수 없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