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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용산 세계평화도시 구상
입력 : 2019-11-12 오전 6:00:00
임채원 경희대 교수
올해가 불과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도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연초 3·1운동 100주년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컸지만, 일년 동안 국민적 관심과 합의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프랑스 에펠타워나 미국 자유의 여신상 같은 거대 조형물이 제안되기도 했다. 거대 조형물이 현대 공공미술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지만, 지금 시대에 적합한 평화공원과 상징 조형물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필요하다. 이를 위한 국민적 모금운동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할 것 같다.
 
2019년이 대한민국의 과거 100주년이었다면, 2020년은 새로운 100년이다. 다음 100년에 이 나라는 어떤 비전과 방향성을 가지고 동아시아와 세계 안에 위치하게 될까? 그리고 서울은 어떤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는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제시될 수 있다. 지난 20세기 한국을 한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사고할 수도 있지만, 가장 첨예하게 지난 100년간 동아시아 분쟁과 갈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시야를 확장해 보여줄 수도 있다.
 
지난 100년을 넘어서 동아시아 패권의 역사를 가장 첨예하기 보여주는 곳은 서울 용산이다. 동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지난 150여년의 근현대사에서 패권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용산이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이곳에 주둔하기 시작했고, 1894년 청일전쟁 때에는 일본 군대가 주둔했다. 1904년 러일전쟁 시기 일본군은 용산 지역 300만평을 수용하는 계획을 세우고 용산 지역에 일본군이 본격적으로 주둔하기 시작했다. 1945년 광복 이후는 미군이 이곳에 주둔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지난해 8월 공식적으로 평택으로 이전했다.
 
근현대사에서 동아시아 패권의 변화를 중국과 일본을 포함해서 가장 잘 보여주는 지역이 용산 미군기지 부지다. 이 지역이 지난 150여년 동안 갈등과 분쟁이 가장 첨예한 곳이었다면, 21세기 새로운 100년에는 역설적으로 동아시아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용산 지역일 수 있다. 73만평에 이르는 미군기지 부지가 한국으로 이전되는 협상이 한·미 사이에 진행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다가올 100년은 동아시아 패권의 상징이었던 용산 지역을 어떻게 평화와 공존의 새로운 상징으로 만들 수 있느냐에 달린 것이기도 하다. 이곳은 20세기 전쟁과 21세기의 동아시아 평화를 한꺼번에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이곳에 세계평화기념관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할 수 있다. 용산 전쟁기념관이 있는 자리에는 그 이전 육군본부가 있었고, 일제 시대에는 일본군 79연대가 주둔했다. 바로 옆에는 78연대가 있었다. 이 두 연대가 일제 강점기 서울 지역에서 주력부대 역할을 했다. 78연대 건물은 해방 이후 미8군 사령부로 사용되고 있다. 미8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는 작업이 완료되고 한국이 이 지역을 되돌려 받으면 이곳에 세계평화기념관을 조성할 수 있다.
 
전쟁과 평화. 20세기 동아시아 패권의 역사를 반영하는 전쟁기념관과 21세기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세계평화기념관이 나란히 서 있다면, 과거 150년부터 미래 100년까지 한국이 동아시아와 세계에 어떤 역할을 할 지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기념관과 세계평화기념관을 중심으로 작게는 용산 지역을, 크게는 서울을 세계평화도시로 선언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다양한 제도와 정책들도 제시할 수 있다.
 
미군기지 자리에 남아 있는 유엔사령부는 한반도 분단의 또 다른 상징이었다. 유엔사령부는 철저하게 냉전적인 역할을 해왔고, 한반도 긴장과 대결의 중심에 있었다. 유엔사가 한반도 어두운 분쟁의 역사를 상징한다면, 용산 철도기지창 부지에 유엔시티를 조성해서 세계 평화의 제도적 틀을 제시할 수 있다. 201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환경계획(UNEP), 세계보건기구(WHO) 등 9개의 유엔 기구들이 이전해 유엔시티가 만들어졌다. 20세기 분쟁의 상징이었던 용산 지역에 테러리즘과 사이버범죄, 기후변화 등 새로운 글로벌 이슈를 담당하는 유엔시티를 조성할 수 있다.
 
내년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해다. 새로운 100년에는 새로운 국가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 그 국가 비전은 특정한 공간에서 상징물로 표현돼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도 있다. 용산 미군기지 부지에 전쟁기념관과 세계평화기념관을 나란히 만들어 20세기를 넘어서는 21세기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의 구상을 고민할 때다.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 구상에는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평화의 미래로 가는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 용산 세계평화도시 구상은 그 단초다.
 
임채원 경희대 교수(cwlim@khu.ac.kr)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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