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돈인 시대가 있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먼저 알고 증시에서 떼돈을 벌었다는 금융왕국 로스차일드 신화는 허구라고 하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누구보다 빠른 정보력을 중요한 경쟁력으로 삼았다. 육군이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을 달리고 배를 갈아타는 동안, 로스차일드 가문은 비둘기 통신과 쾌속 요트를 활용해 최소한 30시간 이전에 승전을 알 수 있는 통신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정보의 시간 차이는 상인들에게 중요한 기회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보의 시간 차이가 사라진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과 모바일은 전세계에서 정보의 시간 차이를 0으로 만들어 버렸다. 정보가 돈이라는 상업시대의 성공신화는 철 지난 진리다.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 문제인 시대다.
미국이 왜 9.11 테러를 막지 못했는가를 밝히는 청문회는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노이즈라는 교훈을 남겼다. 테러의 징후를 포착할 수 있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너무 많은 정보 속에 묻혀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시됐던 몇 개의 정보를 연결하면 테러를 모의하는 사실(정보의 의미)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미국은 정보의 양이 사람이 분석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정보분석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지난 달에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묶은 이른바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자원인 데이터' 시대가 열렸다고 정부와 업계는 환영했지만, 시민단체는 '개인정보 보호'의 빗장이 풀렸다며, '개인정보 도둑법'이라고 우려했다.
사실 많은 국내 기업들은 외국의 플랫폼 기업들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잘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데이터 규제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한탄했다. 시민단체는 개인의 정보가 기업의 돈벌이에 무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데이터 주권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에 세금을 매기자고 주장한다. 업계와 시민사회 모두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이고 돈이라는 생각에 잡혀 있다.
중동의 원유 개발로 돈을 번 사람은 원유 채굴업자와 (원유를 석유로 가공한) 정유업자이다. 원유가 묻힌 사막의 부족장과 유목민들도 돈을 벌었지만, 크지 않다. 디지털 경제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고 프로세싱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은 데이터가 아니고 프로세싱 능력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데이터의 소유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제품이라는 정보의 공급자와 구매자의 구매 의향이라는 정보, 즉 공급자와 소비자가 제공해 준 정보를 이어주는 프로세싱에 집중하고 있다. 많은 데이터를 다루는 구글을 보자. 검색이란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검색자가 원하는 것을 '기막힌 알고리즘으로 적절히 골라서' 제공하는 것이다. 찾아 주기를 바라는 정보의 제공자와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검색자를 이어주는 프로세싱(뛰어난 알고리즘)이 핵심이다. 아마존도 물건을 파는 상거래보다는 이런 프로세싱 역량을 빌려주는 아마존 웹 서비스(클라우드)에서 돈을 벌고 있다. 페이스북도 이용자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프로세싱 기업이다.
사실 경제 활동은 인풋–프로세스–아웃풋의 과정을 거친다. 프로세스 과정을 거치면서 가치가 더해진다. 제조업의 경우 기업은 프로세스를 위하여 인풋 재화를 자신의 소유로 했다가 아웃풋 하면서 재화의 소유권을 넘기며 이득을 얻는다. 플랫폼 기업은 재화를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핵심인 프로세스만 소유하고 인풋(공급자)과 아웃풋(소비자)을 자신의 프로세스를 거치도록 만들었다. 재화와 정보를 가진 자(공급자)와 얻고자 하는 자(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찾아오도록 한 것이다. 양면 시장을 중개하는 플랫폼 기업이 재화를 소유하지 않고도 더 가치가 큰 기업이 된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데이터가 원유이고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프로세스를 만들어 데이터가 찾아오도록 해야 돈이 된다. 데이터에 대해 불평하기 전에 좋은 프로세스를 만들어 데이터를 가진 자와 원하는 자가 찾아오도록 하는 능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리고 나는 내 데이터를 푼돈 받고 팔기보다 데이터를 주고 더 큰 가치(서비스)를 받기 원한다.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