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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350곳 옮기면 지방이 살아날까


2차 지방이전의 기대와 한계…건물보다 일자리·대학·생활권을 함께 옮겨야 한다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350여 곳을 지방으로 옮기는 작업이 다시 시작된다. 정부는 9월 3일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원칙을 발표하고 올해 4분기 안에 구체적인 이전계획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2027년부터는 새 청사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민간 건물을 빌리는 방식으로 일부 기관의 ‘선도 이전’에 착수한다는 구상이다.

발표 직후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공공기관 하나가 오면 수백 개의 안정적인 일자리와 지방세 수입이 생기고, 직원 가족의 소비가 늘며 지역 대학 졸업생의 취업 기회도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전 대상 기관 직원에게는 집과 배우자의 직장, 자녀의 학교를 한꺼번에 바꿔야 하는 문제다. 어느 지역에 어떤 기관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지자체 사이의 갈등도 커질 수 있다.

먼저 ‘350여 곳 이전’이라는 표현부터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350여 곳은 정부가 이전 필요성을 검토하는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의 전체 후보군이지, 지방으로 옮기기로 확정된 기관 수가 아니다. 기관마다 수도권에 남아야 할 이유와 수행 기능, 통폐합 여부를 검토한 뒤 실제 대상이 정해진다. 현재 인터넷에 떠도는 특정 기관의 이전 지역 명단은 정부의 최종안으로 볼 수 없다.

정부가 내세운 첫 번째 원칙은 ‘수도권 잔류 최소화’다. 1차 이전 당시 적용했던 잔류 기준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 반드시 수도권에 있어야 하는 기관이 아니라면 이전 대상에 넣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관을 지역별로 조금씩 나누는 대신 기능적으로 연관된 기관을 한곳에 모으는 집적 배치다. 기존 혁신도시의 산업 기능과 정부의 ‘5극 3특’ 성장전략을 고려해 공공기관과 기업, 대학, 연구소가 연결되는 거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세 번째는 지역 대학·산업과의 연계, 네 번째는 교통·교육·의료·문화 등 정주 기반 확충, 다섯 번째는 이전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정부는 민간 건물 임차를 활용해 2027년부터 먼저 이동하고, 더 먼 지역으로 빠르게 이전하는 기관에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대상과 배치 지역, 지원 규모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연말에 공개된다.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발표를 보면 지금 확정된 것은 기관 명단이 아니라 원칙과 일정에 가깝다.

공공기관 이전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차 이전을 통해 수도권에 있던 150개 기관과 약 5만 명이 세종시와 전국 10개 혁신도시로 이동했다. 한국전력공사가 전남 나주로, 한국도로공사가 경북 김천으로, 국민연금공단이 전북 전주로 옮겨간 것이 대표적이다. 공공기관이 이전한 지역에는 안정적인 소비층이 생겼고 지방세 수입과 지역인재 채용도 늘었다.

지역 청년에게 열린 취업문은 분명한 성과다. 정부는 이전 공공기관에 지역인재 채용목표제를 적용해 2022년부터 신규채용 인원의 30%를 이전 지역 대학 출신으로 뽑도록 했다. 모든 기관과 직무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채용 규모와 분야에 따라 예외도 있지만, 수도권 밖 대학에 다니면 취업에서 불리하다는 구조를 일부 완화했다. 공공기관과 지역 대학이 공동연구와 인재교육을 진행할 기반도 생겼다.

그럼에도 수도권 집중은 꺾이지 않았다. 정부 스스로도 1차 이전이 지역 핵심산업과 지역인재 채용, 지방세수 확대에는 긍정적이었지만 수도권 집중을 근본적으로 반전시키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기관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관련 민간기업과 연구기관이 함께 움직이는 연쇄효과가 충분하지 않았고, 일부 혁신도시는 직장은 있지만 생활의 대부분을 인근 대도시에 의존하는 구조가 됐다. 정부 기자회견 전문에도 이런 한계가 명시돼 있다.

사람은 직장만 보고 거주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배우자가 일할 곳이 있는지, 아이가 다닐 학교와 학원이 충분한지, 아플 때 갈 종합병원이 있는지, 퇴근 후 이용할 문화시설과 대중교통이 있는지를 함께 본다. 조건이 부족하면 직원은 가족을 수도권에 남겨 둔 채 주중에만 혁신도시에 머무르는 ‘두 집 살림’을 택한다. 기관의 주소는 지방으로 옮겼지만 가족과 소비, 자산은 수도권에 남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국토연구원도 혁신도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의료·금융·상업·교육·숙박시설이 들어올 수 있는 배후인구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존 도심과 떨어진 신도시형 혁신도시는 생활시설을 새로 갖추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주변 구도심의 인구와 상권을 흡수해 같은 지방 안에서 인구만 이동시키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공공기관 하나를 유치했다고 지역 전체 인구가 순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국토연구원의 혁신도시 유입가구 연구는 기존 도시와의 연결과 충분한 배후인구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번 계획에서 집적 배치를 강조한 것은 이런 한계를 의식한 변화다. 예를 들어 에너지 관련 기관이라면 발전기업과 연구소, 관련 학과, 시험·인증 시설이 있는 지역에 함께 모아야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금융기관은 지역 금융산업과 창업투자, 대학의 금융인재 교육이 연결돼야 한다. 기관 이름의 유명세나 직원 수만 보고 유치하면 청사와 아파트는 생겨도 지역 기업의 생산성과 일자리가 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집적 배치는 또 다른 갈등을 만든다. 효과를 높이려면 한 지역에 여러 기관을 모아야 하지만 모든 지자체는 최소 한 곳이라도 유치하기를 원한다. 정치권이 지역구별로 기관을 나누면 ‘나눠먹기식 배치’를 피하겠다는 원칙이 무너지고, 반대로 몇몇 혁신도시에 집중하면 인구감소가 심한 중소도시는 다시 소외됐다고 느낄 수 있다. 객관적인 배치 기준과 평가점수를 사전에 공개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올 때마다 특혜와 지역 차별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이전 대상 직원의 삶을 비용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 직원이라는 이유로 거주 이전을 무조건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기 쉽지만, 배우자의 직장과 자녀 교육, 부모 돌봄은 현실적인 문제다. 강제성만 높이면 숙련된 직원이 퇴사하거나 수도권 근무부서로 이동하고, 기관의 업무 연속성이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직원 반대만을 이유로 이전을 중단한다면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실행되기 어렵다.

해결책은 일회성 이사비보다 장기적인 정착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임대주택과 통근버스를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배우자의 취업 연계, 국공립 돌봄시설과 의료기관 확충, 지역 간 대중교통 개선이 필요하다. 일정 기간 뒤 직원과 가족이 실제로 함께 이주했는지,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는 비용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조사해 지원책도 조정해야 한다. 직원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전에 정부와 지자체가 선택 가능한 생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인재 채용 역시 비율만 높여서는 부족하다. 해당 지역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공공기관에 입사해도 더 나은 경력과 생활환경을 찾아 다시 수도권으로 떠난다면 지속적인 효과가 작다. 지역 대학과 기관이 전공 교육, 인턴십, 공동연구를 연결하고 지역 기업으로 경험이 퍼지게 해야 한다.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한 일부 청년만 혜택을 받는 구조가 아니라 관련 민간 일자리까지 늘어나는지가 핵심이다.

이전 성과를 평가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가 몇 개 기관과 몇 명을 옮겼는지만 발표하면 정책은 청사 이전 행사로 끝날 수 있다. 가족 동반 이주율, 지역인재의 5년 이상 정착률, 지역 기업과의 구매·연구 계약, 지역 내 소비와 세수, 주변 구도심 인구 변화까지 공개해야 한다. 혁신도시의 인구가 늘어도 인접한 군이나 구에서 사람이 옮겨온 것이라면 국가 전체의 균형발전 효과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방향 자체에는 찬성한다. 민간기업과 대학, 청년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공공기관마저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 남겨 두면서 지역에 스스로 성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의사결정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것은 필요한 출발점이다.

다만 기관을 옮기는 것만으로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다는 기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출생아 수가 줄고 청년이 떠나는 지역에 공공기관 건물 하나를 세운다고 학교와 병원, 기업과 문화시설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공공기관은 지역을 살리는 완성품이 아니라 다른 투자를 끌어오는 마중물이어야 한다. 마중물만 붓고 펌프를 연결하지 않으면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또 하나 주의할 부분은 2차 이전과 공공기관 기능개혁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전체 공공기관의 약 20%에 해당하는 109개 기관의 통합·기능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전 후보 기관이 다른 기관과 통합되거나 기능이 줄어들면 직원 수와 지역 파급효과도 달라진다. 지자체가 현재의 기관 규모만 보고 청사와 주택을 먼저 건설하면 계획 변경에 따른 비용을 떠안을 수 있다. 기관 기능과 이전 지역을 따로 결정하지 말고 하나의 계획으로 공개해야 한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시점은 올해 4분기다. 정부가 발표할 명단에는 왜 그 기관이 수도권을 떠나야 하는지, 왜 해당 지역에 배치하는지, 예상 인원과 비용은 얼마인지, 지역 산업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지가 함께 담겨야 한다. ‘균형발전’이라는 구호만으로 결론을 정하면 지역 간 경쟁과 직원 반발만 남을 수 있다.

공공기관 350여 곳을 검토한다는 계획은 한국의 수도권 집중을 바꿀 수 있는 큰 정책 실험이다. 성공 여부는 지도 위에서 기관 이름을 옮긴 숫자가 아니라 10년 뒤 그 지역에서 청년이 일하고 가족이 생활하며 기업과 대학이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건물을 먼저 옮기는 속도보다 사람과 산업이 남을 이유를 만드는 설계가 더 중요하다. 2차 이전이 1차보다 나은 결과를 내려면 기관의 주소가 아니라 지역의 생활과 경제 구조까지 함께 바꿔야 한다.

이 기사는 2026년 9월 5일까지 공개된 정부 발표와 국토연구원 자료를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실제 이전 대상과 배치 지역은 올해 4분기 정부 계획이 확정된 뒤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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