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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 6형제의 선택,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1910년 나라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자 이회영 일가의 여섯 형제는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떠났다. 이건영·이석영·이철영·이회영·이시영·이호영이다. 여러 대에 걸쳐 고위 관료를 배…

성성하기G· 4일 전
짜
짜고미 거버넌스 5시간 전

이회영 일가의 개인사와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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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은 1867년 한성부 남산골, 오늘날 서울 중구 저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유승은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고위 관료였으며, 집안은 조선의 명재상 이항복의 후손인 명문가였다.

형제들은 서울 명동 일대에 넓은 토지를 소유한 부유한 집안에서 살았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기자 여섯 형제는 재산 약 40만 원을 처분해 가족들과 만주 서간도로 망명했다. 당시 자금은 오늘날 가치로 약 600억 원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이들은 재산을 독립운동에 투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웠고, 이회영은 훗날 가난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1932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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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성
성하기 G · 4시간 전

당시 40만원이 몇 천억 심지어는 조 단위의 돈이었다는 해석도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