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토 프리미엄 3시간 전

빛공해, 밤을 밝히는 조명에도 방향이 필요하다.

늦은 밤, 어두운 골목 끝에 가로등이 보이면 마음이 놓인다. 발밑의 턱을 확인할 수 있고, 집까지 남은 길도 덜 막막하게 느껴진다. 불이 켜진 가게와 환한 버스정류장은 늦게 귀가하는 사람에게 반가운 풍경이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 불을 끈 뒤에도 창문이 환하다면 어떨까. 길을 비추던 조명이 침실까지 들어오고, 맞은편 간판의 빛이 커튼 가장자리에 남는다. 밖에서는 고마웠던 불빛이 집 안에서는 쉬는 시간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다.


조명을 설치할 때는 얼마나 밝은지부터 살피게 되지만 사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빛이 어디로 향하고, 어디까지 닿는가 하는 문제이다.

빛공해라고 하면 별을 보기 어려워진 도시의 밤하늘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집 안으로 원치 않는 빛이 들어오는 일도 생활과 가까운 빛공해다. 보행로를 비추려던 등이 주택 창문까지 밝히거나, 건물을 꾸미는 조명이 주변으로 넓게 퍼지는 경우가 그렇다. 조명을 켜는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불편이 빛을 받는 쪽에서는 매일 반복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빛 때문에 불편하다는 주민과 길이 어두워지면 불안하다는 주민의 요구가 부딪히기도 하는데 두 경우 모두 같은 동네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다. 어느 한쪽의 양보를 구하기 전에, 빛이 퍼지는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볼 만하다.

조명 가로등 밤동네.png

국립환경과학원이 2015년 발표한 보안등 차광판 연구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정 방향으로 새는 빛을 가리는 차광판을 설치하자, 시험한 조명에서 뒤쪽으로 향하는 빛은 60% 이상 줄어들고 길을 비추는 앞쪽의 빛은 유지됐다. 현장마다 효과는 다르겠지만, 길에 필요한 밝기를 확보하면서 주택으로 넘어가는 빛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다.


공원이나 산책로에서는 빛이 닿는 범위를 조금 더 넓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걷는 길 주변에는 나무와 수풀이 있고, 그 안에는 밤에 활동하는 생물도 있다.

2024년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에 실린 연구에서는 빛의 범위를 조절하고 차광 구조를 적용한 도로 조명을 시험했다. 바닥의 밝기를 같게 유지한 조건에서도, 이 조명은 비교 대상인 기존 조명보다 날아다니는 곤충을 덜 유인했다. 생태계 전체의 변화를 설명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조명 설계를 통해 주변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밤에 이동하고 일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조명은 중요하다. 계단의 단차와 길의 장애물이 잘 보여야 하고, 늦은 시간 혼자 걷는 사람이 느끼는 불안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국제조명위원회 역시 2025년 발표한 입장문 안내에서 야간 조명이 교통안전과 안심에 주는 이점을 설명하면서, 수면과 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응 방향으로는 지역의 사정을 반영한 설계와 시간대별 필요에 맞춘 조명 조절을 제시했다.

이 기준으로 동네를 보면 확인할 지점이 구체적으로 달라진다. 횡단보도에서는 건너는 사람이 운전자에게 잘 보이는지, 주택 앞에서는 창문으로 빛이 들어가는지 살펴야 한다. 공원에서는 산책로를 비추는 빛이 수풀 안쪽까지 불필요하게 퍼지는지도 점검할 수 있다. 같은 조명이라도 설치 목적과 주변 환경에 따라 살펴야 할 부분이 다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켜두는 시간도 중요성이다. 영업이 끝난 간판과 장식조명에는 점등시간을 조정할 여지가 있고, 보행로 조명은 저녁과 심야의 통행 상황을 확인하면서 조절해야 한다. 전기를 얼마나 아꼈는지와 함께, 그 시간에 길을 걷는 사람이 불편해지지는 않았는지도 봐야 한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불빛 때문에 불편하다면, 어느 조명에서 오는지와 언제 문제가 생기는지를 기록해두면 도움이 된다. 창문 쪽 사진과 불빛이 이어지는 시간을 남겨 관리 주체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너무 밝다”는 설명에 위치와 시간이 더해지면 현장에서 확인할 부분이 분명해진다. 조명의 각도나 차광 구조, 점등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지도 검토를 요청해볼 수 있다.

관리하는 쪽에서도 민원이 들어올 때만 조명을 살필 필요는 없다. 낮에 보기에는 문제가 없던 시설이 밤에는 특정 집의 창문을 정면으로 비출 수 있다. 주변에 주택이 들어서거나 공간의 쓰임이 달라졌다면, 실제로 불이 켜진 시간에 다시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조정한 뒤에는 실내로 들어오는 빛이 줄었는지와 길이 여전히 잘 보이는지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밤길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간에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조명의 방향과 켜두는 시간을 세심하게 살피는 일은 이들의 일상을 함께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길을 걷는 동안에는 발밑이 잘 보이고, 집에 돌아와 불을 끄면 온전히 쉴 수 있는 동네. 우리가 조명에 기대하는 모습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필요한 곳을 충분히 밝히고, 빛이 머물지 않아도 되는 곳에는 밤을 남겨두는 것. 그 세심한 조절까지 이뤄질 때, 도시의 조명은 제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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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짜
짜고미 G · 3시간 전

빛공해도 배려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네요. 저는 가로등 아래 나무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한 경우가 많았어요.

마토 P · 3시간 전

역시 생각이 깊고 주변을 폭 넓게 바라보는 분이신것 같아요. 가로등 아래 나무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 b

짜
짜고미 G · 1시간 전

ㅎㅎ그런가요. 제가 좀 식물성예요

마토 P · 1시간 전

식물성이라는 표현이 너무 순하고 푸르러 보이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