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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bora11@etomato.com

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2024-02-20 16:37

조회수 :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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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오갔던 지난 겨울이 떠오릅니다. 한국인에게 암은 이미 친숙한 병이지만 가족의 암만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암이 발견 된 것은 지난해 9월이었습니다. 유방외과에서 혹이 발견되었으니, 대학병원에 가보라 했습니다. 바로 유방암 전문의를 수소문했고, 집과의 거리 등도 고려해 세 군데 병원에 예약을 했습니다. 세 군데 모두 한 달 이후에나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빈자리가 날 수 있으니 수시로 전화해 보라는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연 없는 환자들 없겠지만 시급하다는 전후 사정을 전달하고 전화를 끊어야 했습니다. 
 
삼일 정도 지났을까.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취소 환자가 생겨, 다음 주에 바로 진료를 보러 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대형 병원에서 수술 날짜 역시 일 주일 뒤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진행에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 병원은'진단 후 일주일 내 수술 날짜 확정'이라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었고, 바로 수술 날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방암 0기와 1기, 대개 초기로 분류되는 유방암이었습니다.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수술 후 2일간 입원을 한 뒤 엄마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의사는 매일 방사선 치료를 하러 오기 멀테니, 친정집 근처 또 다른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만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무섭고 높고, 어렵게 느껴졌던 대학병원이라는 문턱이 그렇게 쉽게 열렸고 또한 친절했습니다. 운 좋게도 빠른 진단으로 신속한 수술을 할 수 있었고, 지금은 방사선 치료까지 끝났습니다. 6개월도 되지 않아 모든 진단과 수술, 방사선 치료까지 마친 겁니다. 엄마는 오히려 균형 잡힌 식단과 적절한 운동을 병행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보다 소득이 높고 살기 좋다는 유럽이나 미국 등도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의 의료 서비스를 경험하며 '그래도 한국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대 증원을 두고 주요 병원의 전공의가 사직을 하고, 정부는 이에 강경 대응을 예고하며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이 무사해졌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닙니다. 이 시기 수술이 예정돼 있거나, 질병을 발견해 치료가 시급한 상황에 놓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인력이 모자라서 상대적으로 더 심각한 상황의 환자들에 밀려난 다른 환자와 그 가족의 속은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엄마의 암 덩어리가 의료계와 정부가 맞서기 전인 '지난해' 찾아와준 것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 지경입니다. 
 
전공의의 이탈이 많은 병원들은 수술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이미 수술과 입원이 연기되고 퇴원이 앞당겨지는 등 혼란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유례 없는 초고령화의 길을 가고 있는 한국의 인구당 의사 인원이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대전제에는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정부가 의대 증원 이슈를 총선에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억울하다면, 의료인들 역시 국민 생명을 담보로 이기주의에 빠진 집단이라는 세간의 시선이 불편하다면요. 양측이 한발씩만 물러나 협의했으면 합니다. 제때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상태가 악화되거나 목숨을 잃는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요. 의료 인력 양성을 위한 인적, 물적 자원이 충분치 않은 상황을 고려한 단계적 증원 같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해 보입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의료대란'이 가시화하면서 정부가 공공 의료기관과 군 병원을 총동원하기로 한 20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응급실에 민간 환자 응급진료 안내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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