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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입니다
선례(善例)는 선례(善例)를 낳는다

2024-04-23 15:22

조회수 :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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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손들이 중국 법원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자 개인에 약 3억8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들은 한국 법원의 유사 사건 판결을 참고해 소를 제기했습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21년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에게 일본 정부가 1인당 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지난해 11월 이용수 할머니 등 16명이 낸 손배소 항소심에서는 일본이 피해자들에 2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각각 "침략전쟁 당시 주권 국가였던 일본에 대해 타국의 재판권이 면제된다는 '국가면제' 논리를 배척하고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 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중국 일본국 위안부 유족들은 바로 이 '선례(先例)'를 좇아 또 하나의 '선례(先例)'를 기대하며 소송에 나섰습니다.
 
피해를 구제 받기 위한 법적다툼이 장기화 되면 소송 당사자들의 '선례(先例)를 남겨야 한다'는 소신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례가 없어 법원이 판단을 주저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선례가 있었다면 사건이 훨씬 수월하게 해결됐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롭기가 힘들 테지요.
 
그러나 피해자들이 선례 만들기에 집중하는 데에는 선례가 유사 사건의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좋은 판례가 나오면 그 판례 자체가 선례(善例)가 돼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지난하고 고단한 법정싸움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숱한 외면과 무관심, 모욕을 넘어 치욕의 세월을 견뎌야 했지만 끝까지 소송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은 결과 끝내 '피해가 인정된다'는 판결을 받아냈고 이는 바다 건너 중국에까지 닿아 선순환을 만들어 냈습니다. 중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2년부터 2007년까지 장장 15년간 9차례의 재판을 치렀지만 패소했는데, 일본의 전쟁범죄 가해를 인정한 한국 법원의 판결이 이들이 부당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뛸 수 있도록 동력이 된 셈입니다. 거짓된 역사를 후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과 바른 선례(先例)를 만들겠다는 집념이 틔어낸 열매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선고기일에서 승소 판결을 듣고서 기뻐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안타깝게도 소송을 시작한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기에 이번 소송은 그들의 후손들이 진행하게 됐습니다. 모쪼록 일본 제국주의의 망령으로 인권을 유린 당한 피해자 모두가 이제라도 합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중국 위안부 피해 유족이 제기한 소송 추이를 지켜봐야 겠습니다. 선례(先例)가 야만의 역사를 종식하는 선례(善例)를 낳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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